춘정(春情) 아리지 않고두근대지 않으면사랑도 아냐,푸우 뱉는 봄한숨 소리만
12,000년 전쯤 스리랑카는 한반도와 육지로 이어져 있었다. 인도 아대륙과 인도차이나반도, 말레이시아를 지나 한반도까지 이어진 순다랜드를 따라 지난한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후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면서 해수면이 상승하고 순다랜드는 바다 밑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발걸음이 끊어진 건 아니었다. 험난한 항해술을 통해 미지를 향한 인간들의 오랜 꿈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신라에서 스리랑카는 사자국(獅子國)으로 불리었다. 지금은 사라진 사자가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동물일 수 있었던 것은 순다랜드와 해수면 상승의 영향이었다. 운이 좋아 스리랑
통영의 조상들은 남방계 사람일까, 북방계 사람일까? 북방계는 몽고와 시베리아 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고, 남방계는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통영에서 멀지 않은 가덕도에서 7천년 전 인골 48개체가 발굴된 적이 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한국 사람과는 DNA가 다른 인골이 다수 있었다. 얼굴 뼈의 모습이 유럽 중부 지방에서 발굴된 고인골과 매우 닮았다. 장례 풍습도 비슷했다. 한반도 남쪽만이 아니라 몽골 지역에서도 비슷한 인골들이 발견되어, 5천년 전 이미 광범위한 이동과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15~20만년 전 아프리카에
빈자일등(貧者一燈) 폐지 리어카 밀고가는 등굽은 노인이마엔 땀방울 송송무표정 속 표정 무심하다달관이 뭔지 초월이 뭔지 모른다네도심의 대낮이 반짝 더 밝아졌다
미륵산 남쪽 산양읍 신전리 226-1, 현재 '그'가 거주하는 주소다. 남쪽 바다를 향해 열린 고즈넉한 언덕. 영화음악의 선구자 정윤주 선생의 묘를 안내하는 입간판을 보고 차를 세운다. 하지만 '그'의 존재를 알리는 간판은 없다.들은 바대로 입간판이 안내하는 쪽으로 산길을 오른다. 복숭앗빛 언덕의 자태를 잠시 감상한다. 봄의 절정이다. 맞은 편 뉘 댁 묘원에 돋아나는 푸른 새잎들은 참 가지런도 하지. 여전히 '그'의 묘는 종적이 없다.SNS에서 찾은 사진 속 방향으로 길을 찾으려니 막막하다. 길은 있을 텐데 길이 없다. 겨울을 지나
"앤드루 노먼 PCR 검사 결과가 '미결정'이라서 24시간 이내에 재검사받아야 한답니다.""8시에 통영으로 출발하는 차량을 10시 출발 보건소행으로 바꾸고 서울 숙박도 1박 연장합시다.""오늘 오후 4시에 하기로 했던 강연은 내일로 연기하겠습니다.""관할 보건소에 확인해 보니, 최초 확진 후 45일 이내에 검사를 받은 경우 재검사 필요 없대요!""서울 숙박 연장하지 마세요. 바로 통영으로 출발합니다.""오늘 4시 강연 예정대로 하겠습니다!"앤드루 노먼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 레지던스 작곡가였지요. 그런데 음악제 개막 직전 입국을 앞두
섬, 영화, 버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잠시 시선 들어 하늘 너머 바다를 바라본다.낭만, 동경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르겠다. 통영 사람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섬은 뭍 사람들이 최애하는 선망의 공간이다. 특히 통영의 섬과 바다는 사람을 미치게(狂, 及) 하는 매력이 있다고들 한다. 영화는 세대를 뛰어넘은 낭만의 대표 문화이고, 버스는 기차, 비행기와 더불어 설렘을 싣고 나르는 낭만의 메신저다.물론 섬과 영화와 버스가 치열한 삶을 담아낸 시공간이라는 점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뭍으로부터 고립된 섬살이는 단순한 낭만의 대상은 아
봄, 꽃의 향연이 한창이다. 물빛도 꽃인 양 톡톡 터지는 시간. 앞다투어 피어나는 봄꽃들을 만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허리는 굽어지고 무릎은 겸손해진다. 발끝이 소심해지며 행여 앙증맞은 꽃들을 밟을까 조심스러운데 눈은 행복 만땅이다.세상은 참 다양하다. 사람도 다양하고, 들꽃도 다양하다. 사람 세상에서는 크고 작고, 잘났고 못났고, 옳고 그르고를 따지지만, 야생에서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다양할 뿐이고, 그래서 마냥 편안하다. 다양해야 자연스럽고, 다양한 것이 훨씬 아름답다. 다양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작은 충격에도 전체가 무너질
명정동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인 세 사람이 난다는 풍수 얘기가 있다. 윤보선 대통령의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한국 문단의 거장 박경리 선생이 명정동 출생이다. 그런데 아직 한 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풍수가가 말한 그 한 명이 이미 태어났을 수도 있고, 장차 태어날 수도 있겠다. 그러니 명정동에 거주하면서 출산과 육아의 꿈을 그리는 이도 더러 있을 것이다.세 번째 여인이 날지 안 날지는 모르지만, 두 명의 여인이 났으니 한 명을 더 기대하는 건 인지상정이겠다.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일 수도 있고, 풍수가의 덕담일 수도 있겠다. 통영성 서문
풍수 이야기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풍수는 과연 우리 삶을 결정하는가? 풍수는 믿고 의지할 만한가?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고, 의식이 삶을 바꾼다. 그러니 공간은 쉽게 우리 삶을 결정한다. 그렇게 믿으며 오랜 세월 우리는 길지(吉地)를 찾아 헤매었다. 생활 터전을 찾아 양택 (陽宅)을 좇았고, 묫자리를 찾아 음택 (陰宅)을 신봉하였다. 지금도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생각하는 집안은 양택이나 음택의 덕택이라고 믿는다. 양택이든 음택이든 본질은 복을 받고자 하는 바람이다.하지만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뜻을
우리는 오랜 세월 존재 하나하나의 절대적 가치보다 공동체 속의 관계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이런 생각과 가치관은 고스란히 문화를 형성하였고, 한 사회의 문화를 보면 그 문화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삶에서 제일 중요한 식의주에서 삶의 철학과 가치관을 만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수천 년에 걸쳐 곰삭은 우리네 가치관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표 음식이 비빔밥이다. 통영에서는 너물밥이 그렇다. 개별성과 공동체성이 살아있다. 청각, 톳, 미역 등 제철에 나는 싱싱한 해초와 나물, 두부 하나하나가 맛과 영양
지역마다 고유한 대표 음식이 있다. 전주비빔밥과 콩나물국밥, 부산 동래파전, 전라도 젓갈과 홍어, 제주 옥돔 등이 떠오른다.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통영너물밥과 충무김밥, 시락국, 도다리쑥국, 다찌, 통영 꿀빵 정도가 아닐까 싶다.이런 지역 특색 음식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 고유 음식이 유명해지면 곳곳에서 너도나도 팔게 되고, 맛집의 레시피도 손쉽게 유통된다. 덕분에 음식이 획일화되고, 지역 특성이 소멸하고 있다.천안 호두과자와 경
벽방 8경 중 제3경인 은봉성석(隱鳳聖石)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옛날 은봉암에는 자연석 세 개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개가 넘어진 뒤 해월선사가 도를 통하였고, 또 한 개가 넘어진 뒤에 종열선사가 도를 통하였다. 이후 이 돌들을 성석(聖石)이라 불렀는데, 그중 한 개만 남아 새로 나타날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성석은 7m 높이의 칼같이 날렵한 부위가 극락보전 지붕 처마와 맞닿아 있다.푸른 발우 모양의 벽방산은 이래저래 기다림의 산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섭존자가 발우를 들고 미륵 부처를 기다리고, 말
벽방산(碧芳山)은 '푸른 밥그릇' 산이다. 원래의 이름도 그랬고, 지금도 벽방산에 있는 사찰에 가면 벽발산(碧鉢山)이라 쓰고 있다. 벽발 보다 발음하기 쉬운 벽방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푸를 벽, 바리때 발. 바리때는 전통사찰에서 사용하던 그릇으로 발우(鉢盂)라고도 한다.누가 언제 지은 이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름의 뿌리는 2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쓰던 바리때를 제자 가섭존자에게 전하니 이를 들고서 미래에 올 미륵부처(彌勒佛)를 기다린다는 불교 설화에 기인한다. 불교에서 가사와 발우(의발衣鉢, 옷
예나 지금이나 새해 첫날은 해맞이로 시작하는 게 당연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그게 자연스러웠고 편안했다. 해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에, 첫날 첫 순간 해를 바라보며 새 마음 새 뜻을 다졌다.태양을 가리키는 '해'는 일 년을 뜻하는 한 '해'가 되어,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희망차게 맞는 풍습이 생겨났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해맞이해야 한 해를 잘 지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한국 사람들의 해맞이는 유별나다. 그만큼 해를 사랑했다.'해'는 만 생명의 근원답게 갖가지 말의 근원이 되어 삶을 따뜻하고 '환'하게 비
이 땅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은 늘 부적이 필요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을 흔드는 거대한 파도로부터 가족과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의지할 그 무엇이 필요했다.믿음의 대상은 많았다. 큰 나무와 큰 바위, 큰 산이 지켜줄 수 있다고 믿었다.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들판과 언덕을 호령하는 힘센 동물도 있었다. 어느 곳에서는 뱀이 지켜준다 믿기도 하였다.안녕의 첫 번째는 먹거리였다. 삶은 단순했다. 먹지 못하면 굶주리고, 허기져 쓰러졌다. 때로는 목숨을 놓아야만 했다. 태풍, 가뭄, 산사태나 힘센 동물의 습격이 몰아치지 않
신년 초, 철도 관련 뉴스가 둘 있었다. 동해선 마지막 단절구간인 강릉~제진 철도건설이 착공되었고, 통영을 지나는 남부내륙철도 기본계획이 확정, 고시되었다. 둘 다 2027년 완공 예정이다. 통영에 KTX가 들어오고, 통영 사람도 드디어 기차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통영 역사가 바뀐다. 한국만이겠는가? 동해선을 따라 북한을 지나 유라시아 대륙을 내달릴 수도 있다.통영 지인들과 꿈꿔온 이야기가 있다.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철도가 연결되면 통영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완전한 통일이 아
유럽의 무역상이었던 주앙 멘데스는 당시 화폐인 은(銀)을 휴대하였고, 그 은이 마야문명과 아즈텍 문명에서 생산된 은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00년 전인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다. 마야와 아즈텍 문명은 은 문화를 꽃피우던 시절이라, 침략자들은 은 세공품을 녹여서 은괴로 만들어 유럽으로 가져갔다. 이렇게 탈취한 은이 차와 도자기 무역으로 명, 청으로 유통되었다.당시 청나라에는 '은'을 다루는 상인조합 '행'이 있었는데, 여기서 지금의 은행(銀行)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애초 영국은 자국에
장군당에 작은 예를 올린다. 장군의 위력과 신통함에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성을 다해 공동체의 안녕을 빌었던 옛사람들의 간절함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녕이 내 안녕의 바탕임을 믿기 때문이다. 발길을 돌려 바다를 향해 산길을 내려간다.에럼바우길은 여기서부터가 난 코스다. 줄 하나 잡고 바윗길을 내려와서, 벼랑길을 따라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부엉이 굴을 만난다. 밤이면 부엉이가 들앉아 부엉부엉 할 것 같은데, 앙증맞은 꽃들이 한가롭다. 멧돼지와 낚시객들만 찾는다는 외진 길을 따라가면 너럭바위들을 지나고 구당포성터를
말러 교향곡 8번은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합쳐 1,0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출연했다고 해서 '천인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지요. 오늘날에는 그렇게까지 하는 일은 잘 없고, 이를테면 지난 2011년 서울시향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했을 때는 474명이 출연했습니다. 거대편성만큼이나 기술적으로도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이 작품은 공연장에서 감상할 기회가 흔치 않습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이 곡을 들으려고 스위스 루체른까지 갔던 얘기를 제가 2016년에 칼럼으로 썼던 생각도 나네요.지난해 발매된 음반 가운데 구스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