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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예술은 지역에서 어떻게 구성되는가 <2>-2행동하는 문화, 커뮤니티가 중요하다
성병원기자  |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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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21  14: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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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브루거의 '헤어마켓 기념비'A자는 시민들이 새겨넣은 것이다.

 

▲ 장 뒤뷔페의 조각품은 아이들이 나무처럼 타고 기어오르는 공공예술품이다.

 

▲ 잔메 플렌사의 작품은 시민들의 물놀이 장소다.

 

 

  공공미술 관행에 전환의 계기를 가져온 것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1981년 설치, 1989년 철거)를 둘러싼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 3.7미터, 총길이 36.6미터의 코르텐 철판으로 제작된 세라의 '기울어진 호'는 1979년에 공공시설국이 맨래튼 다운타운에 위치한 연방정부 건물 앞의 광장을 위해 의뢰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이 1981년에 설치되면서부터 광장에 인접한 연방정부 건물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이 작품이 건물로의 진입을 어렵게 하고 동선을 방해하며, 광장의 경관을 망치고 있다고 불평하며 작품을 다른 장소로 옮겨 줄 것을 요구했다.

 

작품 설치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였던 작가와 건물 사용자들은 법정 시비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작품의 철거로 논란은 마무리됐다. 당시의 공공미술, 특히 공공조각에 대해 작품이 놓여진 장소와 아무런 특별한 관계없이 단순히 장식적인 기능만을 한다고 비난하며 특정장소를 고려한 자신의 조각을 이러한 당시 공공미술 관행에 대한 대립물로 제시했던 세라는 "사람들은 이제는 장식품이 아닌 조각으로서의 작품에 직면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을 옹호했다. 그러나 공공미술이 도시개조의 기능을 가져야만 한다는 당시 일번의 암묵적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세라의 '진정한' 예술작품은 결국 일반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고, 당시 공공시설국의 뉴욕지역 행정관이었던 윌리엄 다이아몬드(William Diamond)는 1989년에 드디어 '공공'의 이름으로 '기울어진 호'를 브루클린의 창고로 치워버리는데 성공했다.


 이렇게 세라와 관련된 논란 이후, 공공미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의뢰했던 공공시설국은 이 이후로 '건축 속의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결정하거나 심지어 작가의 계획안을 변경할 때조차도 해당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가능한 한 많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이 결정과정에 반영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고 한다.


 뉴욕의 퍼블릭 스페이스 프로젝트의 공공미술 프로그램 디렉터인 신시아 니키틴(Cynthia A. Nikitin)은 당시 공공미술에 대한 관례적인 접근법이 '예술을 향유하기에 부적당한 장소'에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예술'을 부과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하면서 작품이 놓여야 할 곳을 계획하고 예술이 무엇인지 알려주면서 지역공동체를 끌어들이는 것만이 공공미술을 성공적인 경험으로 이끄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공공예술 '소통'으로 시작된다


 시카고시는 공공예술 작품이 시민들과 소통하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땅콩, 피카소, 분수 등으로 불리는 작품만이 아니라 샤갈의 '사계절',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츠의 '아고라', 호안 미로의 '미로의 시카고'등 시민들이 의자처럼, 놀이기구처럼 가까이 대하는 공공예술품들이 여럿 있다.


 시카고 시민의 축제장으로 애용되는 시카고시 리차드댈리시민센터 플라자. 취재단이 방문한 '할로윈데이' 전야인 지난달 30일, 축제가 잠시 열기를 식힌 사이 아이들은 웃옷을 바닥에 깔고 미끄럼을 타고 내렸다. 아이들이 몸을 부빈 곳은 광장 앞에 세워진 피카소의 작품이었다.


 작가가 따로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 조각은 말(馬)이나 새, 사람의 형상을 닮았지만 작가 이름그대로 '피카소'라 불리운다. 처음엔 '이게 무슨 작품이냐'며 볼멘 소리를 했던 시민들이지만 지금은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조형물이 됐다.


 시카고시의 우뚝 솟아있는 빌딩이나 널찍이 펼쳐진 공원 한 켠에는 반드시 공공예술 작품이 있다. 설치 초반엔 시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지만 세월의 때를 묻히며 층층이 쌓여가는 공공예술 작품은 시카고시의 또다른 얼굴을 만들어내고 있다.


 자우메 플렌자의 '크라운 분수'는 평소엔 얼굴 형상의 화면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나온다. 아이와 어른이 철퍼덕 거리면서 물놀이를 하는 장소다.
 작품의 '훼손'도 '소통'으로 읽는다


 또한 거리에 낙서하는 걸 금지하고 있는 시카고시에서 공공예술 작품에 새겨진 그래피티를 허용하게 만들었다. 메리 브루거의 '헤이마켓 기념비'가 그중 하나다. 메이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이 작품은 노란색 페인트로 아나키스트를 뜻하는 'A'라는 알파벳을 새기고 옷을 입히는 등 때때로 수난을 당해왔다. 하지만 시카고시의 담당자는 그같은 '훼손'을 '소통'으로 읽는다.


 시카고문화센터의 나단 메이슨(퍼블릭아트 프로그램 큐레이터)은 "그래피티가 불법이지만 작품과 소통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지우지 않았다"면서 "시카고시와 시장을 나타내는 글자를 지우고 A를 새긴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통영의 경우 동피랑마을은 아름다운 벽화로 지역민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에게 명소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공공미술 갤러리가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하나의 작품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하지 않는다면 공공디자인 현장을 감상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공공미술 작품속에는 아기자기한 벽화 앞에서 사진 한 장 박는 재미 이상의 그 공간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감겨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행동하는 문화'가 변화를 이끈다


 시카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비영리 공공미술 기관인 '스컵처 시카고'의 지원을 받아 공개된 '행동하는 문화'는 매우 의욕적인 프로젝트였다.


 1993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는 장소와 공간, 거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해 탄생하는 커뮤니티아트를 확산시켰다. 전시장의 액자안에 가둬진 예술이 아니라 삶과 장소에 관여하는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환기한 참여자들은 공공예술의 교육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수잔 레이시는 도심 곳곳에 100개의 돌을 놓고 후대가 기릴 만한 여성 이름을 써넣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꽃 등으로 장식했고, 돌에 새긴 여성인물이 있는 동네에선 그 '작품'을 가져갔다. '하하'와 '플로드'라는 작가 그룹은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수경재배로 상추를 키우며 어떻게 건강한 음식을 먹을 것인지 머리를 맞댔다. 망글라노 오발은 마약, 성차별, 매춘, 거리 싸움패 등을 청소년들의 시선에서 재정의하고 지역공동체 지형도를 비디오로 제작하도록 한 프로젝트를 벌였다.


 이들 프로젝트는 공동체에 장기적 영향을 미치며 공공예술의 가능성을 돌아보게 했다. 프로젝트의 지속성이 공공예술의 성공을 가늠하는 유일한 잣대는 아니지만 사회변화를 이끄는 동력으로서의 예술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장애나 가난 등 여러 이유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미술교육에 상관없이 스스로 작품활동을 벌이는 아웃사이더아트. 시카고문화센터 1층에선 캔버스를 앞에 둔 장애인들이 붓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와 그의 부인의 얼굴을 그린 것도 있고 만화적 상상력으로 원색의 풍경을 펼쳐놓은 그림도 보였다.


 정신장애인 등 19세에서 67세까지 35명의 작가가 이곳을 작업실로 이용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더 이상 창작활동을 할 수 없는 장애인 작가에게 미래를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프로그램이 시카고시의 든든한 지원 아래 창작실까지 갖춘 '온워드(Onward) 프로젝트'로 발전됐다.


 프로그램 디렉터인 롭 렌츠는 "장애인 작가에게 작품 제작 기회를 주고 이들의 목소리가 예술세계까지 들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도 공공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장애인이어서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작가마다 경력을 쌓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자연과 인간, 사회가 얽인 관계가 공공예술


 '행동하는 문화' 이후 15년. 시카고의 공공예술은 크든 적든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도 이견은 있다. 지역은 예술을 통한 공동체의 변화를 원하지만 제도권 미술은 그같은 변화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학적 관점에서 커뮤니티아트의 결과물을 두고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저소득층이나 이민자 공동체에서 반짝 행해졌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실패한 사회사업'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한 삶에 기여하는 예술이 쉬이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마그넷스쿨처럼 사과나무 한 그루가 공공예술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열리면서 공간이 변하고 그 과정을 지켜보며 자연과 인간, 사회가 얽힌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시카고미술대 드레아 호웬슈타인 교수는 "미술관이나 문화센터를 벗어나 비소비적 예술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소비적 문화나 테크놀로지를 거부하고 슬로푸드 운동에 발맞춰 다양한 공공예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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