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최초 축산분야 HACCP 인증 업체 '맑은축산' 성기홍 대표, 3년만에 해썹 포기
학교급식 최저가입찰제로 먹거리 위협, 납품육류 등급 구분 못해

 

 
2008년 통영 최초로 'HACCP' 인증을 받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맑은축산'(서호동) 성기홍(61)대표가 3년 만에 HACCP 인증 포기를 선언했다.
 
HACCP(이하 해썹)이란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zard Analysis Critical Control Point)의 영문약자로 식품의 원료관리, 제조·가공·조리·유통의 모든 과정에서 위해한 물질이 식품에 섞이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과정의 위해요소를 확인·평가하여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안전관리 인증 기준'으로 불리며 국내 식품관련 품질인증등급 중 최고 레벨이자 인증 받기 까다로운 해썹을 통영 최초로 받은 성기홍 대표는 오히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너무 힘들어요. 해썹. 그거 이제 포기할 겁니다."
 
어렵게 통과한 해썹을 포기한다며 한숨을 쉬는 성씨에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나라엔 정부가 학교단체급식을 할 수 있는 법을 재정하면서 해썹이 처음 등장했어요. 그만큼 질 높은 법적 인증이 필요하게 된 거지. 학교급식이 곳곳에 보급되면서 이왕 급식납품에 뛰어든 이상 최고가 되고 싶었어요. 해썹 인증을 위해 있던 건물도 더 신축, 재설계 하고 시설비만 5억이 넘게 들었죠. 투자한 시간도 몇 년이 걸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게 '계륵'이야."
 
최고가 되기 위해 투자한 해썹이 왜 계륵일까.
 
"제게 해썹이 '계륵'이 된 건 여러 이유가 있어요. 해썹과 함께 관공서 전자입찰이 생겼거든.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된 건 좋은데 무제한급 경쟁이 된 거에요. 학교 급식 납품자격을 따려면 해썹은 있어야하고, 나 같은 소상공인들은 그걸 뒷받침 할 시설과 인력유지가 어려우니까. 큰 축산가공업체는 당연히 나보다 운영·관리 부담이 적을 테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주변의 작은 시장과 슈퍼마켓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자체 마진 줄이고 유통도 바꿔가면서. 그런데 이젠 친환경농산물이 유행 하더라고요. 학교마다 친환경 축산물을 요구하는데 구할 수가 있어야죠. 거제·통영·고성 쪽에는 친환경축산농가가 거의 없어요."
 
친환경축산물의 대부분은 개인농가들인데 이런 농가들을 모아 대형축산업계가 독점하기 시작 했고 사천과 진주 등지에 친환경축산이 발달하면서 그 지역 축산업계가 선점할 수 있었던 요인도 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먼 전남 순천의 친환경축산사업단과 어렵사리 계약을 마치고 경쟁을 하려던 성씨는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늘어가는 운송비 부담으로 두 손을 들었다고 했다.
 
"내 능력부족으로 안되는 것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걱정 되는 건 최저가 입찰이란 거에요."
 
학교 급식, 최저가입찰의 문제점
 
정부기관의 공정한 거래를 위해 도입한 나라장터 전자입찰제. 입찰이기 때문에 최저가의 개념이 적용되는데 먹거리까지 공산품과 같은 최저가입찰을 적용 하는 게 문제라는 성 대표.
 
"대형축산업계가 물량부터 다 선점하니 입찰에서 우리가 이길 방법이 없어요. 마진 차이가 다를 테니까요. 그런데 최저가의 허점이 품질이란 걸 생각하면 식자재에서는 매우 위험한 적용입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소고기이력제도를 도입했다. 소의 출생에서부터 도축·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의 정보를 기록·관리해 위생·안전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이력을 추적하여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제도다.
 
업체가 학교에 소고기를 납품 시 기본적으로 도축증명서, 등급판정서, 소고기이력추적서를 제출하며 학교 측은 제출된 서류를 축산물품질평가원 홈페이지를 통해 납품된 고기와 도축된 고기의 동일성을 검수한다.
 
한편 학교마다 일반적으로 3개월에 한번 씩 납품된 소고기 샘플을 채취해 DNA검사를 의뢰하여 한우와 비한우를 확인 한다.
 
"보통 학교들은 국거리 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에요. 그 중 양지가 단가대비 맛이 좋아 많이 찾는데요. 소 한 마리에 양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대략 12% 정도 인데 학교마다 양지를 찾게 되면 모자라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다고 양지가 부족할 때마다 도축하게 되면 특정부위가 남으니 이럴 수도 없어요. 그러니 학교마다 요구하는 양을 맞추기 위해 양지와 설도, 우둔 같은 국거리용 고기를 섞어서 납품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죠. 또 대부분 덩어리가 아닌 조리하기 편한 상태로 손질해서 고기를 납품하기 때문에 우리 같은 전문가들이나 구분할까 일반인들은 알 방법이 없어요. 물론 업체에서 올바르게 거래해야 되겠지만 그 많은 양지를 구하려면 소를 매일 잡아도 될까 말까한 상태에서 과연 대형업체들이 단가경쟁을 하는 현실 속에서 지킬지 의문이네요."
 
대형업체야 거래처 한, 두 곳 없어져도 큰 타격이 없을지 모르지만 작은 가게에서는 그런 장난을 치다 걸리면 문 닫는 건 기본이고 동네에서 살기도 힘들 거라며 나름 영세업자의 장점이라고 했다.
 
허술한 DNA 검사와 등급 확인이 어려운 급식 시스템
 
"허점은 이것 말고 또 있어요. 등급판정서는 1등급도 1+, 1++ 같이 다양해요. 제출된 등급판정서와 평가원 홈페이지로 확인한다 하지만 대형업체의 경우 납품하는 곳이 많으니 도축도 많이 하게 되고 여러 종류의 도축증명서와 등급판정서가 나오는데 이걸 사용해서 서류를 조작할 수 있다는 거죠. 서류상 1등급 고기일지 몰라도 영양사가 받은 고기가 정말 그 고기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현재 없어요. 1등급에 다른 등급을 적당히 섞어서 납품하면 맛도 구분하기 어려울 텐데. 대형업체가 최저가 입찰에 성공하고도 이윤을 얻는 부분이 이런 곳에 있다고 봐요. 등급 별로 가격차이가 크거든. DNA 검사요? 그건 한우냐 아니냐를 검사 하는 거지 등급을 검사 하는 게 아니에요. DNA 검사라는 것도 한 달에 적어도 고기가 6번 이상 납품 될 텐데 3개월에 18번이라고 해도 그 중 한번을 검사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실제로 관내 몇몇 급식학교들을 조사한 결과 조리용 상태로 오는 고기가 등급판정서와 동일한지는 따로 확인 방법은 없으며 등급판정서와 홈페이지상의 차이유무만 검수할 수 있었다.
 
DNA 검사도 학교마다 약 3개월에 한번 납품된 고기 중 무작위로 일회 채취하거나 검사 있는 달에 맞춰 납품된 고기를 채취해 검사를 의뢰하는 방식이었다.
 
"급식 납품할 수 있는 관내 해썹 인증업체는 통영축협, 맑은축산 뿐인데, 전자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학교들 상대로 견적을 넣어도 축협이 가지는 공신력과 영향력에서 밀리니 학교 재량으로 선택하는 수의계약도 따내기 어렵고요. 이젠 해썹 반납하려 합니다. 운영·관리하며 버틴 동안 늘어난 건 빚뿐이에요."
 
다분히 영세업자가 지역의 관심과 도움 없이 무한경쟁에서 버티기 힘든 것도 있겠지만 올바른 음식만 먹어야 할 우리 아이들의 급식에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 허점이 비단 우리 지역에 국한 된 것이 아닌 동일한 시스템을 가진 전국적인 급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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