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동 통영태양떡 임성재 부부 "태양의 기운을 두배로 담았어요"

"쭉쭉 뻗은 가래떡처럼 무병장수 하세요". 설 명절을 앞둔 지난달 30일 봉평동 통영태양떡 임성재 사장이 부지런히 가래떡을 뽑고 있다. 설날 아침 가족과 함께 나누는 떡국은 길게 늘어진 가래떡처럼 가족들이 오래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스름이 짙게 깔린 30일 새벽녘. 컴컴한 어둠 속, 한 곳만이 훤히 불을 밝힌다.

간판 위에 거뭇하게 새겨진 다섯글자 '통영태양떡'. 얼추 스무평 남짓한 공간, 가게 한켠의 큼지막한 찜통에서 피어오른 뽀얀 연기가 자욱이 번진다. 가게 안은 구수한 떡 내음이 코끝을 자극한다.

설 명절을 목전에 둔 이맘 때는 동네 떡집들이 전초전을 치를 시기다. 여느 떡집은 사람 손 하나가 부족할 판이지만 이 곳은 곱상한 아주머니 한명에 무뚝뚝한 아저씨 둘이 전부다.

"손을 맞춘지 몇 년짼데, 셋이면 충분해". 제분기로 멥쌀을 빻아내던 아저씨가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끗 하더니 찜통 하나를 작업대 위로 뒤집는다. '툭'하며 떨어지는 것은 눈가루를 뿌린 듯 새하얀 백설기다.

네모난 찜통에서 나온 네모난 백설기. 아주머니가 기다란 재단칼로 반듯하게 스무 조각을 낸 뒤 하나씩 봉지에 담는다.

스무개씩 반듯하게 썰어낸다.
아주머니는 "애기 100일이라고 주문한 백설기예요. 100일이니까 100명이 고루드시라고 이렇게 나눈다"고 했다. 한 판에 딱 20개, 네 번 더해 100개를 채운다.

깨끗이 씻은 멥쌀을 제분기에 넣고 한 번 빻은 뒤 소금으로 간을 맞춘 물을 섞어 반죽하고 또 한 번 빻는다. 가루 상태인 반죽을 찜통 틀에 고르게 펴고 20분 정도 쪄내면 완성되는 게 백설기다. 설명은 쉽지만 제대로 된 백설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모든 떡은 일단은 재료가 좋아야 되. 멥쌀부터 들어가는 각종 재료들 하며 소금 간, 찌는 시간, 온도 다 중요하지.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소금이야. 최소한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을 써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당기는 맛이 나. 소금이 좋으면 설탕이나 당분을 안 넣어도 단맛을 내지".

아저씨의 소금 예찬에 아주머니는 "비법을 가르켜주며 어쩌냐"고 성화지만 아저씨는 태연하다. "알아도 비싸서 함부로 못해. 적정 비율도 모르고…".

툭 쏘는 말투 영락없는 통영사람이다. 묵묵히 제분기를 돌리던 주인장 임성재(46)씨. 산양읍 연명에서 태어나 누구나 그랬듯 화려한 학장시절을 보낸 그다. 스무살 젊은 청춘에 도전했던 사업들에서 줄줄이 실패를 맛본 후, 뒤늦게 인연을 맺은 게 '떡'이다.

"간판쟁이도 해보고 술집도 했는데 전부 쫄딱 망했어. 용돈벌이 삼아 떡집에서 일했는데 어느날 한 번 해보고 싶더라고. 평소에도 요리하는 걸 좋아했거든. 딱히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닥치는 대로 해 봤지".

만드는 방법이 지역마다 사람마다 제각각인 탓에 정답이 없는 분야지만 독학을 통해 나름의 원칙과 기준을 세웠고 부지런히 지켜왔다.

훌륭한 스승이나 타고난 손맛은 없었지만 그저 열심히 한 덕분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대치동에서 떡집을 할 땐 직접 만든 떡을 청와대까지 납품했었다. 부산에 내려와선 롯데마트, 메가마트 등 대형마트 공급업체의 공장장을 맡기도 했다.

그러다 6년 전, 타향살이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밀양댁 부인과 함께 서호동에 떡집을 차렸다. 그런데 서울, 부산서 검증된 그의 떡 맛이 통영에선 시큰둥 했다.

"익숙한 맛이 아니다 보니 처음엔 많이 어색해 하셨어. 가령, 대도시에서 많이 사용하는 체리를 넣었더니 이상한 냄새가 난다하고 포도를 넣었더니 특유의 시큼한 맛에 떡이 쉬었다는 분들도 있었지".

그래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공수한 천일염만을 고집하고 직접 관리하는 300평 텃밭에서 재배한 쑥만을 넣는 그의 고집은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좋은 상권을 찾아 이듬해 도남동으로, 그리고 지난해 이맘때 지금의 봉평동 가게를 얻어 옮겨왔는데도 어떻게 알고 알았는지 매번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까지 생겼다.

"사실 조선소보고 다리건너 왔어. 처음엔 대박이었어. 마침 좋은 먹거리로 떡이 소개되면서 조선소 근로자들이 출근길에 들려 아침거리로 많이 사갔어. 그런데 조선소가 이지경이 되면서 우리도 영 신통찮아. 그래도 늘 찾아와 주는 분들이 있어. 쑥쓰러워 말은 못해도 참 고맙지".

마흔 여섯, 굴곡진 삶을 풀어놓는 사이 예쁜 무지개떡이 나왔다. 단호박을 넣어 물들인 노란색, 딸기로 색칠한 분홍색, 흑미를 갈아 색을 낸 검정색 등 3가지 색상을 층층이 쌓은 삼색떡이다.

여기에 포도로 넣은 보라색과 희색을 추가하면 오색떡이 된다. 무지개떡도 백일잔치용이다.

달달한 단호박떡, 몸에 좋은 7가지 좋은 재료를 통째로 담은 모듬떡, 쫀득한 식감이 일품인 감자떡, 고소한 콩고물을 입힌 인절미 등 10여 종을 만들고 나니 가게를 밝힐 때만해도 새벽 5시를 가리키던 시계바늘이 어느새 아침 7시 하고도 30분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 마지막 주인공이 등장할 시간이다. 설 명절을 목전에 둔 요즘, 추석 송편에 버금갈 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것은 '가래떡'이다.

만들기는 쉽다. 백설기와 같은 방법으로 쪄낸 반죽을 압축기에 넣고 쭉쭉 뽑아내면 된다.

탱글탱글, 갓 뽑아낸 가래떡은 통째 먹어도 일품이다. 이를 냉풍 건조해 말린 뒤 어슷하게 썰면 흔히 보는 떡국용 떡이 된다.

새해 첫날, 가족과 함께 떡국을 먹던 우리네 풍습 탓에 설 명절 2~3일 전부터 가래떡 만드느라 밤잠을 설쳐야 한다.

연중 중 제일 바쁘고 힘겨운 순간이지만 이때만큼 좋은 때도 드물다. 넉넉해지는 주머니 사정만큼 마음도 푸근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어슷하게 썬 떡을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무사안녕을 기원해 태양처럼 가래떡을 동그랗게 썰어 만든 '태양떡국'을 먹었다고 한다. 마침 이 곳 가게가 태양떡집이다. 태양떡집 가래떡으로 만든 태양떡국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태양의 기운을 2번이나 담았으니 받을 복도 2배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가 만든 떡국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어스럼이 짙은 새벽녘 유일하게 불을 밝힌 통영태양떡.

가게 한켠에서 뽀얀 연기를 내뿜는 찜통.

▲ 제분기에서 곱게 빻아낸 멥쌀가루.

▲ 이른 새벽부터 만들어낸 감자떡.

 

 

 

눈가루를 뿌린 듯 새하얀 백설기.

▲ 눈가루를 뿌린 듯 새하얀 백설기.

 

▲ 무지개떡 만들기. 노란색을 내는 단호박.

 

▲ 층층이 색이 다른 무지개떡. 3색이다.

 

 

통영태양떡의 맛이 비결, 땅끝마을 해남에서 공수한 천일염이다.

가래떡 만들기.

한번쪄낸 백설기를 재료로 사용한다.

 

▲ 초벌 단계.

▲ 초벌 된 것들을 다시 넣고 뽑아낸다.

▲ 길쭉한 가래떡이 쭉쭉 뽑아져 나온다.

 

뽑아낸 가래떡은 일단 자연건조한다.

▲ 건조가 완료된 가래떡. 이 것을 엇썰어 놓으면 우리가 흔히보는 떡국거리가 된다.

가래떡을 뽑고나니 벌써 아침이다.

쫄깃한 감자떡.

새벽 5시부터 만들어낸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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