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우체국 박재오 집배원 "보내분 마음까지 그대로"
'토, 일, 월', 단 3일뿐인 올 설 명절 연휴. 덕분에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선포된 곳이 있다. 택배사다.
특히 올해는 짧은 연휴 탓에 귀성 대신 선물로 대체하는 수요가 많아져 소포와 택배 물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상 연휴 시작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배송 전쟁', 이맘때 택배기사들은 "눈코 뜰 새 없다"표현을 실감해야 한다.
참전을 목전에 둔 지난 30일 오전 9시께. 무전동 통영우체국 2층 분류센터는 벌써부터 전운이 감돈다.어른 주먹만 한 것에서 두 팔을 힘껏 펼쳐야 안을 정도의 큰 것까지, 산더미처럼 쌓인 2천여 개의 배송박스들은 발 디들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사과, 배 등 제수용 과일부터 생필품, 식재료세트까지 설 선물들이 대부분이다. 넘쳐나는 물량 탓에 평소 사용했던 동별 분류라인은 무용지물.
"명절 앞에는 늘 이래요. 그런데 올해 조금 더 많은 듯 하네요".
처음 보는 이들은 입이 떡 벌어질 '현장'이지만 우편배달 16년차 박재오 집배원에겐 꽤 익숙한 '풍경'이다.
스물일곱, 늦깎이로 집배원이 돼 일반우편을 담당했던 그는 3년 전 택배대원으로 합류했다.
통영우체국은 배송 구역별로 한마음, 매일봉, 새벽 등 3개 팀과 1인당 배송범위를 기준한 64개구로 나눠 우편과 택배배송 업무를 수행한다.
박재오 집배원은 도산, 광도, 용남 등 면단위를 전담하는 새벽팀 소속이다. 죽림매립지 일원을 목적지로 둔 택배들이 그의 몫이다.
평소 통영우체국으로 떨어지는 하루 택배물량은 1,500여 건, 이 중 130~150개의 배송품이 그을 손을 거쳐 기다리던 주인 품에 안긴다.
분류를 거쳐 오전 10시께 물류센터를 나서 늦어도 7시 전후면 그의 일과도 마무리된다.
그런데 명절이 전에는 선물 배송이 늘어 하루 물량이 2,500여 건, 1인당 250여 건으로 껑충 뛴다. 하루 10시간 배달에 매달린다고 할 때 2분에 1건씩 쉼 없이 움직여야 하는 양이다.
때문에 수취인 정보가 잘못됐거나 전화번호 하나가 틀리면 낭패다.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고 낮선 번호라며 전화를 받지 않는 수취인도 많아 제때 물량을 처리해 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때문에 통영우체국은 일찌감치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28일부터 설 연휴까지를 설 소통 특별 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중 총 2만8,300여 건의 배달 물량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하루 물량은 예상치에 근접했다. 전체 물량이 많다보니 물류차량 도착도 지연되고 분류 하는데도 한참이다. 일찌감치 서둘러야 11시께 배송 출발이 가능해 진다. 가뜩이나 시작이 늦은데 들를 곳이 많으니 밤 10시를 넘기기가 예사다.
당연히 점심, 저녁을 제때 챙겨 먹는 것은 호사다. 빵과 우유로 대충 해결할 수밖에 없다.
"밥 한끼 먹는 20~30분이면 못해도 5~6건 배달이 가능해요. 전날 접수된 건 다음날 배송하는 게 우체국택배의 원칙이고 약속이죠. 약속 지키려면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요".
짧아도 일주일, 길면 열흘가량을 그렇게 보낸다. 때론 올림픽 개막을 기다리는 것처럼 연휴 시작일을 기준으로 디데이(D-Day)를 잡고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렇다고 남에게 내색하는 법은 없다. 통영우체국 집배CS(고객만족)리더라는 책임감 때문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명절 전에 배달하는 물건은 보내는 분이 마음을 담은 선물이잖아요. 보내는 마음이 제때, 제대로 전달하는 게 임무인데 우리가 찡그리면 받는 사람 기분도 언짢을 수밖에 없겠죠. 게다가 친절교육을 하는 사람이 그럼 안되잖아요".
벌써 10시30분. 이런 저런 질문에 답하느라 가뜩이나 늦은 출발이 더 지연됐다. 분류된 물품들을 케이지에 싣고 서둘러 지하로 이동한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뒷자리를 화물칸으로 만든 11인승 봉고가 대기 중이다.
주변에선 이미 가져온 물품을 차량과 오토바이에 싣느라 분주하다. 일반우편과 소형 소포를 오토바이에 챙겨담은 집배원들이 하나, 둘 출발한다.
경차에 물품을 싣던 한 동료는 조수석까지 꽉꽉 채우고도 부족했는지 덩치가 큰 것들을 차량 지붕에까지 얹고는 테이프로 단단히 고정한다. 신속한 배송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라고 했다.
박재오 집배원도 서두른다. 동선을 감안해 늦게 배달될 물건들을 먼저 빈틈없이 채워 넣는다. 죽림매립지 내 원룸이 목적지인 것들이 제일 마지막이다.
주소지를 확인 후 원룸단지 지도가 프린트 된 판위에 점을 찍는다. 이를 토대로 최단거리의 동선을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손목에 찬 시계가 11시10분을 막 넘어섰다. 차량 1대에는 도저히 못 들어갈 것 같던 물품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늦었네요. 먼저 가야겠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꼴찌다. 차량을 몰고 출구로 향하던 그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여 집배원이나 택배기사들 보면 빈말이도 '고맙다. 수고한다'고 해주세요. 말 한마디지만 참 힘이 되거든요.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