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4·19혁명이 45돌을 맞이하였다. 벌써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다가가고 있음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4·19혁명을 장년이 아닌 유년시절에 머물러 성장이 멈춘 듯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4·19혁명은 공권력의 횡포에 대한 국민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권재민의 민주주의의 원리를 그대로 입증하였으며,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일기 시작한 이른바 “스튜던트 파워(student power)의 우리나라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과 1926년 6·10만세사건,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사건을 통해서 강한 저항의식과 열렬한 애족애국을 발휘한 빛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4·19혁명은 그러한 전통적 저항의식이나 애국심의 발로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4·19혁명은 긴 시간 동안 잃어버린 국민의 주권을 찾기 위해 독재자를 상대로 투쟁하여 이를 성취함으로 이 나라 역사의 귀중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할 것이므로 어떤 사건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으뜸가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시발이자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근간이고 헌법전문에 그 이념 계승을 규정함으로써 건국이념으로까지 승화된 것이 4·19혁명이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기념일이 있다. 기념일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4·19혁명 기념일을 다른 기념일처럼 그냥 “단지 기념일”라고 생각할 뿐 4·19혁명일이 무엇인지도 4·19혁명 당시의 희생자, 부상자 및 그 유가족에게만 특별한 아니 잊을 수 없는, 잊지 못하는 과거로만 기억되는 것이 안타깝다.

 

유년시절에 머물러 있는 기념일을 우리 사회에서는 성장촉진제를 투여해서라도 장년에 맞는 지위와 위상을 4·19혁명에 부여하여야 하지는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4·19혁명일이 다가오고 있다.


“자유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커다란 댓가와 의무, 그리고 더 큰 개인적 희생이 뒤따른다.”라는 미대통령 고(故) 존F케네디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의 선조는 개인의 안전이나 이익을 내세우지 않고 싸웠다.


4·19혁명의 고귀한 피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국민 각자가 우리를, 나아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행하여 할 사명을 새롭게 하고 통일의 앞날을 앞당기며, 국민 전체의 화합을 다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민주 발전의 원동력인 4·19민주혁명이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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