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24일 해뜨는 집, 39년 문화동에서의 마지막 풍경

문화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분식집 '해뜨는 집'.

대한제국 고종황제 시절 설립된 통영최초의 공교육기관인 103년 역사의 통영초등학교, 98년 역사와 문화의 산실 봉래극장, 39년 추억의 분식점 해뜨는 집….

통영시 문화동과 동고동락해 온 역사들이다.

통영의 이름을 남겨주고 간 통제영의 심장부인 이 곳은 지난 400여 년간 행정의 중심, 교육의 중심,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지난 1990년대 말 통제영 복원사업이 시작되면서 충렬여중·고교, 통영초교를 비롯한 학교,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 행정기관과 교육기관들이 문화동 시대를 폐막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추억의 학교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흙을 담아 옮기고, 한국문학계의 어머니 박경리 소설가는 50여 년 만의 고향방문에 세병관 기둥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2013년 3월 24일 또 하나의 역사가 저물었다.

추억의 맛으로 유명한 영원한 사랑방 문화동 95-3번지 '해뜨는 집'이 문화동 시대를 마감했다.

1975년 바로 앞 건물인 통영시 문화동 165-4번지 현 비촌치킨 자리에서 튀김과 떡볶이 등의 분식집으로 문을 연지 39년 만이다.

김영준, 이순복 부부.
김영준, 이순복 부부가 큰 아들이 두 살 되던 해에 "매일 해뜨는 것처럼 희망적이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해뜨는 집'으로 간판을 걸고 장사를 시작, 부부의 젊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삶의 터전이다.

40대를 기준으로 그 이전 세대는 비촌치킨 건물을, 그 이후의 세대는 현재 가게를 기억한다. 부부는 39년 중 절반 이상의 세월을 지금 가게에서 보냈다.

"아이고, 경순이 아니가. 부산으로 시집 갔다더만 우짠 일로?" 튀김을 튀겨내던 이순복씨가 화색을 띠며 안부를 묻는다.

"하하하, 친정왔다 아입니까. 언니랑 얘기하다 이 떡볶이하고 튀김, 고구마 맛탕이 먹고 싶어서 왔어요. 잘 계셨지요. 근데 오늘까지만 여기서 장사한다고요. 섭섭해서 우짜노. 우리 친구들이 추석에 와서 보고 깜짝 놀라거예요. 해뜨는 집 어디갔노 하면서요" 하며 명함을 여러 장 챙긴다.

"언니 한테도 주고, 친구들도 주고 할려구요. 초등학교 때부터 단골로 40대인 지금은 친정 올 때 마다 들리는 참새방앗간인데, 무전동까지 찾아 가야 하니 아쉽죠"하며 최대한 많이 포장해 달라고 한다.

부부와 아이가 함께 온 서울 관광객 김종수씨 역시 "저희는 통영 맛집과 추억의 집 검색해서 물어물어 찾아왔어요. 옛날 학창시절 생각도 나고 아이에게 옛날 꿀방도 먹이고 하니 좋은데. 이사 간다니 다음에는 네비게이션에게 물어 찾아야 겠네요"하며 웃는다.

39년간 365일 그랬듯이 문화동 마지막 영업일인 이날도 부부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신선한 재료로 새우튀김, 김밥말이, 야채튀김, 쥐포 튀김, 오징어 튀김, 꿀방, 고구마 맛탕, 어묵, 떢복이를 야무지게 만들어냈다.

남편 김영준씨는 주특기인 라면을 쉴 새 없이 끓여냈다. 오후 3시께 손님들은 문화동 시대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가게 뿐 아니라 도로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펼쳤다.

"앞으론 이쪽으로 오세요".
안주인 이순복씨는 "우리도 문화동 이곳이 좋아요. 학교가 옮겨가고 관공서가 옮겨가도 이 동네사람들과 정이 들고, 추억의 맛이라 알고 손님들이 절로 찾아오니 얼마나 반갑습니다. 헌데 이제 무전동으로 가니 우리집을 찾아 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한다.

바깥 주인 김영준씨는 "그래서 무전동 전자랜드 뒷편으로 이사 가도 메뉴를 딱 이대로 할 낍니다. 추억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여요. 추억을 잘 찾아 오시야 할낀데…"너털 웃음을 보인다.

기자도 세병관 백일장 갈 때 마다 들리던 참새방앗간이자 17년 전 모든 것이 생소한 수습 시절, 초년병 기자끼리 눈물겹게 떡볶이와 튀김을 먹던 그 추억이 떠올라 튀김을 한 봉지 가득 담았다.

이제 '해뜨는 집' 추억의 맛이 무전동에서 활짝 떠오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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