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할머니들 20년 역사와 함께 해 온 송도자 대표

"어머니, 어머니 가면 저도 갑니다. 그 버티기 힘든 하루 하루가 모여 이렇게 정의의 비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됐습니다. 우리 어머니 김복득, 당신의 이름은 평화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경남 통영·거제 시민모임 송도자(52) 대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경남 통영·거제 시민모임 송도자(52)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김복득(96) 할머니를 이렇게 정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의의 비 건립위원회 상임공동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김복득 할머니에게는 이 세상 모든 굴곡과 아픔을 함께 풀어내고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 한 동반자이자 딸이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피붙이 하나 만들지 못했지만, 피붙이 보다 더 눈물겨운 진한 정과 가족애가 있기에 어느 누구 하나 감히 이들을 '어머니와 딸'이 아니라 부정하지 못한다.

송 대표는 2002년 8월 15일 통영·거제지역에 생존해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돌보기 위해 시민모임을 결성했고, 11년째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암흑의 역사와 아픔의 역사, 사회적 편견을 뚫고 나온 그 11년의 세월. 죽을 만큼 그 힘든 시간과 싸워 드디어 오는 4월 6일 통영 바다가 당당히 내려다 보이는 남망산 언덕에 통영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 '정의의 비'를 세운다.

송 대표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연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1992년 한국정부가 위안부 등록을 받기 시작했고, 한국정신대연구소에서 통영과 거제를 비롯 전국에 흩어진 위안부 할머니들을 상대로 증언을 채록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연구원이 선배를 도와 처음으로 할머니들을 뵈었는데 눈물로 범벅이 되면서 처음 증언을 들었습니다. 엄연히 피해자들인데도 위안부였던 것이 마치 자기 죄처럼 여겨 숨어 살고 계셨고, 그 한과 눈물, 고통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함께 오게 됐네요." 첫 인연을 회상했다.

2002년 조사 당시 통영 거제 지역 8명의 할머니들이 살아계셨으나 지금은 통영에 단 한 분, 김복득 어머니 밖에 생존해 있다.

때문에 송 대표는 지난 20년간 마음이 엄청 바빴다.

통영 지역 6명의 할머니들을 설득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는 엄청난 노력과 눈물이 따랐으며, 단일 지역 인구 대비 최대 피해자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도 나왔다.

할머니들의 삶은 말 그대로 비참했다. 가슴 아픈 과거는 개인사로 치부돼 수치스러움으로 사회에서 격리돼 있었다.

그냥 친구 되기로 시작했다. 봄에 쑥도 같이 캐고, 차도 마시고, 수요 집회에 동행하다.

"그래, 할머니들의 잘못이 아니다. 피해자인 우리 어머니들의 인권과 명예를 되찾는데 나서자"는 생각에 뜻있는 이들과 모임을 결성, 2002년 8월 15일 발족했다.

그리고 봉선화처럼 순수한 어머니들의 명예와 여성 인권 찾기에 앞장섰다. 증언 채록과 생존 동영상 촬영, 그리고 다양한 다가가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어머니들은 지금 내가 살아가는 끈이다. 그런데 차례 차례 다섯 어머니들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심한 상실감과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다. 복득 어머니와 내가 요새 울보가 됐다"며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한다.

정의의 비 건립과 김복득 어머니 전기 '나를 잊지 마세요' 자료집 발간에 하루 24시간 부족, 그동안 발을 동동 굴렀다. 이제 경남교육청이라는 공교육기관에서 올바른 역사서를 발간, 지역 사회 교과서로 사용된다는 것 자체만 생각해도 행복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은 끝났다고 하지만 우리 어머니들을 '매춘부'란 낙인이 찍힌 상태로 돌아가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힘들어도 여기까지 왔다. 지난 20년간 외쳐온 그 목소리가 이제야 사회와 소통, 너무 기쁘다"고 말한다.

김복득 어머니 자료집과 4월 6일 당당히 남망산에 들어설 정의의 비가 우리 아이들에게 생생한 역사 교과서가 되고, 역사 체험의 장으로 활용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사업도 실천 계획서를 만들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뿐 아니라 여성 인권, 학교 폭력 예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역사에는 정신이 있고, 그 정신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보다 소중한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어머니들의 고귀한 인권과 명예를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할 소중한 정신"이라고 강조하는 송 대표.

오늘도 통영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정성에 감복, 김복득 할머니부터 고영진 교육감, 경남도, 통영시, 고사리손 아이들까지 모금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우리 시민들이 조그만 더 힘을 보태면 귀한 사업이 결실을 맺게 된다.

오는 4월 6일 남망산에서 우리 아이들이 김복득 할머니 손잡고 역사의 귀중한 한 순간을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이제 시민 모두가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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