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석 민노총 부산교통지회장…경남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인정 복직 판정
부산교통 부당노동행위도 인정…사측, 판정 불복해 중앙노동위 재심 청구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리는 가운데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열린 부산교통 규탄집회 현장. 두 딸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김행석 지회장의 부인이 두 손을 꼭잡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5월27일,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정오를 넘기자 제법 굵어진 빗줄기를 뚫고 강구안 문화마당으로 200여 명 남짓의 무리가 집결했다. 부산교통 규탄시위 참가자들이었다.

'단결투쟁' 글귀가 선명한 붉은띠를 머리에 두르고 비옷을 갖춰 입은 이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남성들 틈바구니서 눈에 띄는 여성 셋이 섞였다. 셋 중, 둘은 유난히 앳된 얼굴이다. 두 손을 꼭 잡고 입을 꾹 다문 채 결연한 눈빛으로 앞을 응시한다.

꼬박 20일 전,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김행석 민주노총 부산통영교통지회장의 부인과 두 딸이었다.

복수노조 설립 후 사측으로부터 부당해고를 당했다 최근 지노위의 복직 판정을 받은 김행석 지회장. 그는 "10년이 걸린다해도 사측의 부당한 행위와 맞서겠다"고 했다.
"참,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오지 말라고 몇 번을 말렸는데도 끝끝내 따라 나왔죠. 못난 남편, 부족한 아빠지만 응원한다고. 힘내라고. 속내를 모르는 이들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모르겠네요".

통영지역 시내버스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부산교통에서 불거진 사상 첫 노사갈등.

지난 3월, 기존 노동조합을 회사측의 이익만을 대변해온 '어용노조'로 규정, 노동자 권익대변을 앞세운 새 노조가 출범하면서 지난 세월 곪아왔던 노사갈등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새 노조는 사측이 복수노조 와해를 위해 반인권적이고 불법적인 노조탄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며 사측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후 새 노조는 사측 대표 등을 상대로 총 10여 차례에 걸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노동부 고소를 감행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해 버스 차고지에서 있었던 환경오염행위 등 내부 비리도 폭로했다.

사측은 새 노조원에 대한 해고 조치로 맞대응했다.

첫 번째 대상이 새 노조 수장이던 김행석 지회장이었다. 사측은 자체 징계위원회를 개최, 조발(예정시간보다 빨리 출발) 7건, 노선위반 1건, 단축운행 1건 등을 이유로 지난 3년간 일했던 김 지회장을 단박에 해고했다. 이때가 5월6일이다.

노동 운동이 처음이었던 그였다. 지금에 와 고백하지만 그땐 두려움이 앞섰다고 했다.

"예상 못한 건 아닌데 막상 닥치니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데요. 아내나 딸들 볼 면목도 없고. 보통 직원 자녀들은 버스 탈 때 요금을 안 받아요. 그런데 해고 다음날 딸아이가 버스에 타니까 기사분이 '너그 아빠 짤렸으니까 돈내라'고 하더래요. 겉으로 웃고 넘겼지만 속으로 피눈물 흘렸어요. 부당해고 된 노동자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정말 뼈저리게 느꼈죠".

급한대로 노동부에서 나오는 실업급여와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계를 이었다. 부당해고에 항의하기 위해 100일간의 1인 시위에도 해봤지만 사측은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조합원 3명을 추가로 해고 조치했다.

"차량 내부에 설치한 CCTV를 꼼꼼히 분석해서 작은 실수까지 꼬투리 잡고선 해고 사유라고 우기더군요. 사실상 본보기가 된 셈이죠. 가장 많이 지적된 조발의 경우, 그동안은 5분 이내는 그냥 넘어갔는데 1분 일찍 나선 것까지 문제 삼더군요. 새 노조 설립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죠".

결국 경남지방노동위원회(위원장 이동걸, 이하 지노위)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다.

지노위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으로 노사 간의 분쟁에 대한 조정과 판정을 전담하는 준사법적인 행정기구다.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3자로 구성된 심판위원회로 운용된다.

지노위 심판위는 최근 심문회의와 판정회의를 거쳐 김 지회장에 대한 해고조치가 부당하다며 복직 판정을 내렸다. 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도 인정된다며 시정조치했다.

함께 구제 신청을 했던 나머지 3명 중 1명도 복지판정을 받았다. 2명은 아직 심의가 진행 중이다.

"지노위 판정 직전에 노조원들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어요. 정직 징계를 남발했죠. 새 노조원이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정직 5일, 정직 10일을 내렸어요. 그런데 복진 판정 이후 잠잠해졌어요. 부당노동행위까지 인정된 탓에 사측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졌죠. 떼고 달고를 반복하던 노조 게시판도 이제 제자리를 잡았어요. 핍박받던 입장에선 큰 변화죠".

그에 대한 지노위 판정 이후 새 노조와 뜻을 같이하겠다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다. 노조 출범 상시 39명에서 한 달여 만에 23명으로 줄었던 조합원이 최근 52명으로 늘었다. 부산교통 소속 근로자가 총 154명인 점을 감안하면 1/3이상이 새 노조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김 지회장은 여전히 실직자 신분이다. 사측이 지노위 판정에 불복, 곧장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중노위에서 복지판정을 받아도 곧장 복직이 되는 것도 아니다. 노동위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조정안이다. 법원의 판결과 같은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사측이 중노위 판정까지 거부하면 민사재판까지 거쳐야 한다. 이 경우, 복직이 된다 해도 최소 2~3년이 걸린다.

"사측 임원이 넌지시 이런 말을 건내더군요. '2~3년은 걸린텐데 버틸 수 있겠나'구요. 민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2~3년이 아니라 10년이 걸린다고 해도 저 역시 끝까지 갈 참입니다".

때문에 김 지회장에게 이번 복직 판정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부산교통이란 큰 회사가 알면 알수록 '주먹구구'식이예요.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 기본적인 복지 등 근로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완전히 무시돼 왔단 게 이제야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죠.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강구안 집회 때 아이들한테 약속한 게 있어요".

담담하게 말을 잇던 그가 순간 눈가를 훔쳤다. 눈동자가 붉게 달아올랐다. 애써 먼산을 모며 숨을 고른 뒤 말했다.

"언제든, 어디서든 당당하겠다고. 아이들이 커서 성인이 됐을 때 아빠에게 잘못됨이 없었다는 것을 꼭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저 대신 밖에서 일하는 아내도 그거면 된다고 합니다. 사실 복직 판정 전까지는 앞도 안 보이는 싸움이었는데 이제는 이길 수 있는 긴 싸움일 뿐이란 걸 알았어요. 믿고 응원해 주는 가족과 동료들이 있기에 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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