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자존심

   

통영의 용남면 동달리 바닷가.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를 들으려 했던 시인 장콕토가 아니더라도 그 바닷가에 서면 누구나 저절로 귀가 크게 열리게 될 것이다.
속삭이듯, 속닥거리듯, 메밀꽃 화안히 피어나 바람에 휘날리듯 잔잔히 몰려오는 파도의 글썽임과 속삭임을 귓전에 흘리면서 바닷가를 어슬렁어슬렁 거닐어 보면은 거기 맵씨 좋은 찻집 하나가 눈에 밟힐 것이다.
그 찻집에 올라 베란다에 앉아서 눈앞에 펼쳐진 동달리 바다를 바라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아니, 과히 환상적이라 할만 하다.
통영의 그 어디에 서서 바다를 휘둘러 보아도 그 정도의 풍광은 아닐까 보냐고 한다면은 달리 변통할 말이 없겠으나 그러나 그 바다에는 적어도 이런 것이 남아 있다.
그리움이라는 것이다. 불현듯 그리움을 불러 일으켜 준다.
대상이 누구이든, 시간과 세월이 얼마나 흘렀든 누군가에 대한 까닭모를 그리움을 불러서 좋았던 한 때를 되돌려 세워 주는 그런 마력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러니 그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
그곳에는 최근 밤마다 즉흥연주회가 열리게 되면서 제법 음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찾아온다.
얼마 전에는 서울에서 자칭 유명인사(현재 인기리에 방영되는 KBS1 토·일 역사드라마에서 모 장군의 역 배역)가 내려와서 지인들과 팬들에 둘러싸여 사인도 해 주고 마음껏 호기를 부렸단다.
즉흥연주회도 일종의 연주회니, 거기에도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가 있는 법. 그런데 그 사람, 연주가 시작되어도 막무가내로 떠들고 산만하게 하여 연주할 기분을 확 가시게 하니, 연주자가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그 사람을 바깥으로 불러내었단다.
물론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사인이라도 받을 것으로 알았겠고.
“당신이 연기를 할 때 주변에서 떠들면 연기가 집중이 됩디까? 그러니 연주할 때에는 조용히 해주는 그런 기본을 모르시나요?” 그 한마디에 그 친구 안색이 변하더라나.
그리고나서,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것이 연기인데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그렇게 목에 힘을 주느냐.”고 했단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여기는 서울과는 다른 통영입니다.” 이 한마디에 그 친구가 정중히 사과를 하더란다.
나는 이 소리를 듣고 통쾌함을 금치 못했다.
모든 것이 서울지상주의이니 그 친구가 아마도 통영의 문화예술을 깔보는, 경시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묻어 나왔을 테고 그런 행동을 그대로 묵과했을 때에는 통영의 이미지가 손상을 받았을 것인데 이 연주자의 용기있는 충고야 말로 통영인다운, 예향 통영의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두고두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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