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에도 인어가 살았다! 더구나 남자 인어가. 옛날 통영 수우도에 늦도록 자식이 없는 부부가 있었

 
다. 아내는 뒤늦게 아이를 가졌는데 열두 달 만에 태어났다. 아이는 비범했다. 첫돌이 지나고부터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놀기 시작했다.

자라면서 아이의 온몸에 비늘이 돋아났다. 일곱 살이 되자 늑골에 물고기 아가미 같은 구멍이 생겼다. 그래서 아이는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당시 남해안 일대 주민들은 왜구의 노략질에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었다. 관군은 왜구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아이는 훌쩍 자라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사량도 앞바다에 왜구들이 나타났다.

바다 속을 헤엄치던 청년은 수우도 은박산 꼭대기로 솟아올라 거대한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왜구들을 내쫓았다. 왜구들이 욕지도 쪽으로 빠져나가자 청년은 욕지도 천왕봉으로 뛰어가 이들을 내쫓았고, 왜구들이 국도 쪽으로 도망치자 또 국도 산꼭대기로 건너뛰어 왜구들을 아주 몰아냈다.

그때부터 남해안 섬사람들은 청년을 설운 장군 혹은 인어 장군이라 부르며 우러렀다. 장군 덕에 섬사람들은 왜구의 침략을 받지 않고 편안히 살게 됐다.
 
차츰 설운 장군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풍문 중에는 설운 장군을 음해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반인반어인 괴물이 남해 바다를 휩쓸고 다니며 어선들을 괴롭혀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할 수 없다는 헛소문이 사실처럼 퍼졌다. 소문은 궁궐 담까지 넘어갔다.

왕은 수우도를 관할하는 호주판관(湖州判官)에게 그 괴물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주판관은 관군을 이끌고 설운 장군을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설운 장군이 물속에서 보름씩 꼼짝 않고 숨어 있기도 하고, 수우도나 욕지도, 국도 같은 섬으로 번개같이 사라져버리니 어찌 잡을 수가 있겠는가. 조정에서는 지원군까지 보냈지만 도리가 없었다.

설운 장군은 오히려 관아로 쳐들어가 호주판관의 부인을 납치해 국도에 숨겨두고 아내로 삼아버렸다. 부인은 임신을 하고 아이까지 출산했다. 아이가 생겼어도 부인은 틈만 나면 탈출할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장군이 잠든 틈을 타 아이를 통나무 속에 띄워 보내며 관군에게 연락을 했다. 관군이 들이닥쳐 장군을 생포했다. 설운 장군은 한번 잠이 들면 며칠씩 계속 자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에 그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장군은 잠든 채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압송 도중 장군은 잠에서 깼다.

당황한 관군이 장군의 목을 잘라 죽이려 했으나 목이 떨어지면 다시 붙고 목이 떨어지면 또 다시 붙어서 죽일 수 없었다. 그때 판관 부인이 잘린 목에다 메밀가루를 뿌리니 더 이상 목이 붙지 않았다. 설운 장군은 마침내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다.

민심을 얻는 영웅을 결코 살려두지 않던 사회. 어쩌면 설운 장군이 호주판관의 부인을 '납치'해서 제 부인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모함일지도 모른다. 섬 주민들을 위해서 살았던 민중의 영웅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를 부도덕한 인물로 매도해야만 하지 않았겠는가.

설운 장군이 숨을 거두자 다시 왜구의 침략이 시작됐다. 장군을 죽인 관군들은 왜구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수우도에 제각을 짓고 장군의 위패를 모셨다. 장군의 영혼이 왜구를 물리쳐주기를 바라며 정성껏 제를 올렸다.
 
보통 다른 섬들이 정월에 당제를 지내는 것과 달리 수우도에서는 시월 보름에 당제를 모신다. 장군이 죽임을 당한 날이 음력 시월 보름날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수우도 사람들은 장군의 제사를 잘 모시면 마을이 태평하고 풍어가 든다고 믿어왔다. 장군을 모신 사당은 지령사다.

지령사 사당 안벽에는 설운 장군과 부인, 두 아이가 있고 그 좌우로 하인 2명이 서 있다. 수우도에는 섬을 일주하는 아름다운 둘레길이 있다. 길은 방파제 부근 신애끝에서부터 시작되어 섬을 한 바퀴 돌게 되어 있다. 산길이지만 경사가 거의 없는 해변 숲길이다.

섬사람들이 옛날부터 다니던 길 그대로라 자연스럽다. 섬 둘레길이 끝나면 다시 마을이다. 마을 어귀 한전 발전소 아래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길어 먹는 물맛이 아주 달다.
 
최근 수우도는 경남에서 유일하게 안정행정부가 선정한 '찾아가고 싶은 섬' 사업대상지로 뽑혔다. 이번에 선정된 전국의 섬은 수우도를 비롯해 인천의 소무의도, 안산의 풍도 등 3곳 뿐이다. 통영에서는 연대도, 우도, 추도에 이어 4번째다.

이 사업 선정에 따라 수우도는 '자연이 내린 신비의 섬'이란 주제로 2018년까지 개발이 이루어지게 된다. 사업비는 총 22억 원(국비 80%)이 투입될 예정이다. 통영시는 이곳에 해안 자연경관을 최대한 활용한 생태체험 탐방로를 조성하는 한편 특산물 판매장, 휴게실, 식당, 매점 등을 설치할 계획이라 한다. 통영의 다른 섬들에 비해 소외감이 컸던 수우도에는 희소식이다.
 
그런데 수우도에는 이미 잘 정비된 탐방로가 나 있다. 그러니 다시 탐방로를 낼 이유는 없다. 쓸데없이 나무데크 등을 까는 탐방로 정비 따위로 귀한 예산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그 예산이 철저하게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섬 개발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어떤 경우에도 섬개발의 중심은 관광객이 아니라 주민이어야 한다. 주민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행 된 섬 개발 사업이 개발업자나 외지인들만 배불리고 끝난 경우는 허다하다.

이미 문광부의 <가보고 싶은 섬> 사업으로 수십억이 투자된 대매물도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그 많은 돈이 투자 됐지만 어설픈 조각 몇 점을 제외하면 남은 것이 없다. 서울의 기획사만 배불리고 만 사업이었다. 매물도 주민들의 실망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컸다.
 
그러니 이번에는 돈을 제대로 써야한다. 외지 사업자에게 이익을 넘겨서도 안 되고 토목사업으로 예산을 낭비해서도 안 된다. 수우도에는 인어라는 아주 희귀한 스토리가 있다. 남자 인어인 설운 장군 이야기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유통가능 한 서사다.

인어장군 이야기를 알릴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예산도 그런데 써야 한다. 수우도를 신비의 인어 섬으로 상징화 한다면 저 로렐라이 언덕처럼 수우도 또한 국제적인 명소가 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물론 특산물 판매장이나, 휴게실, 식당, 매점 등의 시설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잘 한 일이다.

거기에 더해 관광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숙박시설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숙박시설이나 식당, 매점, 특산품 판매장 등은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이익을 나누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발의 이익이 특정인에게만 돌아가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분란만 초래할 뿐이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발이어야 한다. 이미 연대도란 성공 사례가 있지 않은가.
 
또 섬 개발은 무엇보다 관광객이 섬 주민들을 위해 돈을 쓰고 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관광선을 타고 들어와 생수 한 병 안 사먹고 한 바퀴 휙 돌아보고 떠나 버리는 관광객이라면 오지 않는 편이 낫다. 그들은 쓰레기나 버리고 갈뿐이다.

단 한사람이라도 섬에 이익을 주고 가는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섬개발이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그래서 체류 목적이 아닌 관광객의 경우 입장료를 받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어차피 관광선을 타고 들어와 쓰레기만 버리고 가는 관광객들은 오지 않는 것이 섬에 도움이 된다.

그러니 관광객이 적게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섬개발도 관광객 유치도 섬의 환경보호와 섬주민의 이익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 주도가 아니라 주민 주도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대도를 교사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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