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제32대 김환생 통영교육장 퇴임…37년 통영교육 올인, 봉사 향한 제2의 인생

"37년간 한눈팔지 않고 통영 교육에서 보냈습니다. 결코 후회 없는 삶이었습니다. 이제 봉사를 향한 제2의 인생의 서막을 열겠습니다"
 
자신의 37년 교육인생 전부를 통영을 위해 쏟아온 통영교육지원청 제32대 김환생 통영교육장이 오는 27일 정년퇴임을 한다.
 
오로지 통영에서만 평교사에서 교감, 교장, 교육청 학무과장을 거쳐 통영교육장까지 지낸 교육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교육장은 1952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 전주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대교육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다.
 
교직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 그의 나이 29세였다. 방직공장에서 근무도 하고 군대도 제대한 후에 교대를 졸업한 특별한 경우였다.
 
첫 발령지는 자신이 직접 지원한 경남 통영이었다. 이순신의 고장 통영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아름다움이 그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1978년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후 통영 산양, 풍화, 진남, 유영, 통영, 두룡, 소매물도 분교, 하소, 입도분교, 광도, 원평, 유영초교 등 2001년까지 통영의 초등교사로서 역할을 다했다.
 
2001년 통영 산양초교 교감으로 승진, 진남초교 교감을 거쳐 2006년 교장으로 승진 통영 산양과 용남초교를 경영했다.
 
2011년도에는 통영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으로 발령 약 1년 6개월간 통영교육 발전과 지원에 전념한 뒤 지난해 교육장으로 승진했다.
 
통영교육 수장으로 화합과 소통하는 교육청, 전문적 교육 서비스를 화두로 내걸고 민원을 최소화하고 교육 주체들과 소통해나갔다.
 
또 교육현장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BEST ONE 보다는 ONLY ONE이 되라. 주인처럼 일하면 주인이 된다. 항상 전문성 향상을 위해 노력하자"고 항상 당부했다.
 
그는 "결국 교육은 학생 잠재력 개발로 미래 사회 전인적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미래인 학생들의 꿈을 찾는데 전념하고, 통영 교육 브랜드 발전을 위해 그동안의 저력과 성과를 바탕으로 열정과 지혜를 모아 함께 나아가자"고 늘 강조했다.
 
또 지시하고 명령하는 관리자 보다 직원과 함께 호흡하고 의논하는 문제해결의 동반자로서 열심히 뛰었다. 이순신 리더십을 비롯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지역 교과서도 만들어 냈다.
 
세간에서는 37년 그의 교육인생을 한마디로 '통영 교육통'이라고 평가한다.
 
김 교육장은 "37년 뒤돌아보면 꿈같습니다. 언제 그새 흘러갔는지. 맨 처음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아 졸업을 시킨 그 기억이 이리도 뚜렷한데…아이들이 교실을 떠난 자리가 어찌나 서운한 지 혼자 엉엉 울었던 생각이 아직도 납니다"고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을 회고했다.
 
인생에서 천직이 돼 버린 교단에서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입학식에서 한복 입은 교장 선생님이 되기도 했고, 태안 기름유출 사태 봉사도 함께 다니는 등 아이들과 꿈과 끼, 공동체의식을 키우는 것에 전념했다.
 
그는 자신의 교육인생에 대해 "아쉬운 점도 물론 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인생이었다. 늘 따뜻한 가슴으로 대하고자 했던 아이들과의 교육현장이 내 삶터였고, 내 인생의 전부이기도 했다"고 자평했다.
 
37년 교육인생 가운데 연가 한 번을 쓰지 않을 정도로 교육현장에 전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통영은 삶의 터전이자 그의 교육인생의 전부였다. 그런 과정에서 산양초등학교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들 둘도 통영의 자양분으로 성장시켰다.
 
김 교육장은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동안 자신을 위해 달려온 가족을 위해 요리 학원을 다니고, 여행도 다니고 싶다고 한다. 또 사회봉사에도 적극 앞장설 계획이다.
 
그는 "교육=관심"이라고 정의한다.
 
"각박한 세태에 교사의 권위가 바닥을 치지만 교사는 따뜻한 가슴과 수업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입시의 경쟁 보다는 공동체 수업으로 인성 지향을 지향하고 '평생 직장' 보다는 '평생 직업'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통영 출신의 김춘수 시인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비로소 나에게 꽃이 되었다"는 싯귀를 가장 좋아한다는 김 교육장.
 
그가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꽃처럼 귀히 여긴 것처럼 그도 우리 교육계 이미 꽃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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