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의 통영문화는 제승당, 전쟁후의 통영문화는 세병관에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통영에는 300여년간 이어온 중앙정부 직할인 삼도수군 통제영답게 빛나는 전통과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이들은 각기 그 목적과 규모면에서 특성을 살려 매우 균형잡혀 건립되어 있다.


매년 음력 11월 19일 기제사를 모시는 착량묘, 명조팔사품이 보관되어 있고 춘추향사를 지내는 충렬사, 이충무공 동상이 우뚝 서 있는 남망산 공원 등은 통영시민의 자랑이다.


그리고 전쟁중 삼도수군 통제영이었던 제승당, 전쟁 후 삼도수군 통제영이였던 세병관이 그 현장에 그대로 있다.


이 모두 통영시민의 강한 자부심과 높은 긍지를 갖게 하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통영땅 한산 제승당은 임진 7년 전란에서 누란의 위기에 처한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한 삼도수군통제사 불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4여년간 집무했던 삼도수군 통제영터이다.


후세사람들은 1959년 8월 19일 사적 113호로 제승당 일원 525.123㎡(약 16만여평)을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로 지정하였다.


1976년 대대적인 성역화사업을 거쳐 이충무공 기념 사업을 내실화하기 위하여 1979년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은 자동차가 드문 그 당시에 한산도 일주도로 개설과 제승당 앞 바다에 솟아있는 문어포 정상에 한산대첩비를 건립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서거로 이 사업이 미완의 완성으로 끝났지만 전국민의 충무공정신 선양 터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현직대통령으로 드물게 노무현 대통령이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하기도 하고 특히 일본의 독도 만행에 온국민이 자연발생적으로 줄을 이어 방문하고 호국 정신을 새롭게 다짐을 하고 있지 않는가.


이 곳을 놔두고 망일봉 일원에 새로이 한산대첩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선심성, 전시성, 사치성 그 자체이며 중복투자의 표본이다.


혹시 바다와 도서기피증세가 아닌가 의심된다.


무형문화재보존 전수관은 건물이 들어섰고 한독지가의 기부금으로 건립되는 이충무공동상의 좌대가 이미 건설되어 동상만 앉히면 되도록 되어있다.


그러면 남망산 공원에 있는 이충무공 동상은 무엇인가.


통제영 복원사업에 들어가는 내용물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한산대첩 특수영상체험관을 2005년 착공 2008년 준공목표로 용역 보고회까지 마쳤다고 한다. 이 또한 졸속행정의 극치이다.


영상체험관을 뒷받쳐 주는 신구함정을 획득하여 태풍이 내습해도 피항할 필요가 없는 부두가 계획에 빠져있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한산대첩비가 우뚝 솟아있는 정상에서 한산대첩 해전장은 물론 그 당시 일본수군의 웅거지인 견내량이 정북방향 거리 5마일에 탁 트여 보인다.


여기에 올라서면 그날의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고 이충무공의 숨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 하는 현장감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 한산대첩 특수영상체험관을 건립하고 이를 뒷받쳐 주는 부두를 조성하여 그 당시의 전투함인 거북선을 비롯하여 판옥선, 탐망선 그리고 현대의 군함들을 계류시킨다.

 

그 곳은 태풍 피항지이기도 하다.


한산만 제승당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옛날 이충무공이 지휘했던 삼도수군 통제영을 순간적으로 느끼고 체험해 볼 것이다.


특수영상 체험관은 아무데나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가까이 또는 실물을 곁들여 넣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예를들면 고성 공룡특수영상체험관 아래 해안가에 실제공룡발자국이 있고 진해 한산대첩 학익진 특수영상 체험관 부두에는 해군에서 불하받은 군함이 계류되어 있다.


제6대 이경준 삼도수군 통제사 때 삼도수군 통제영을 옮겨온 1604년을 기점으로 한 통영탄생 401주년을 그냥 그대로 둔 채 1592년 한산대첩을 논하고 1593년 한산도에 삼도수군 통제영을 설치하여 삼도수군을 지휘했으며 1598년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제1대 및 3대 삼도수군 통제사 이충무공을 기념한다는 것은 부도난 수표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양지바른 망일봉일원에 아무리 기초공사를 튼튼히 하여 알찬 내용물이 갖추어진 고광대실이라도 전통성이 없고 역사성이 없다면 한낮 흉물에 불과하고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임란중의 통영문화는 새로운 시설물이나 과학화된 기자재를 투입하여 제승당 일원, 임란후의 통영문화는 통제영 복원사업을 통한 세병관 일원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이것이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된 통영시민의 도리이며 최소한의 예의이며 배려이다.


이충무공의 발자취를 따라 착량묘 찍고 충렬사 찍고 세병관 찍고 남망산 찍고 망일봉 찍고 돌아갈 것이 아니라 제승당 찍고 마감할 수 있도록 관광로를 넓히고 늘려야 한다.


한산 연육교가 건설되기 전이라도 셔틀 페리보트를 투입하여 접근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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