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3년(1803) 국법에 따라 이윤겸 통제사 1차 매장…족보 매치 기록 상세
전성비각도(全城碑閣圖)…묻은 장소와 비석 배치 그림으로 남겨, 비석 더 있다
문화재청 추가 정밀 시굴조사 결정, 통제영 연구시급

 
전의이씨효익공파보(全義李氏孝翼公派譜), 전성이씨비각사적(매치비, 全城李氏碑閣事跡, 埋置碑)편. 통제사 비석들을 무더기로 묻은 연유를 기록해두었다.
최근 배추밭에서 발견 세간을 놀라게 했던 조선 경상·전라·충청삼도수군통제사 비석군 발굴 결과, 같은 집안 출신 총 24기의 통제사비가 출토됐다.
 
통제사 비석 24기의 주인공은 제48대 이지형 통제사를 비롯 모두 전의이씨(全義李氏) 집안의 9명의 통제사로 확인됐다.
 
 
이들 비석을 묻은 매치(埋置) 기록과 비문 내용을 전의이씨 효익공파 족보와 사적 등에 글과 그림으로 자세히 기술, 통제사 연구의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또 기록 등에 따르면 통제사 비석 매치비와 통제사 비석이 추가로 더 있을 가능성이 제기, 12일 문화재청에서는 추가 정밀 시굴 조사를 결정했다.
 
통영시가 지난 8∼9일 무전동 한진아파트 뒤편 언덕 옛 통제사길에서 본격 발굴한 삼도수군통제사 비석은 기존 노출된 10여 기 보다 훨씬 많은 24기가 출토, 세상과 만났다.
 
비석의 주인공은 48대 이지형(李枝馨·1기 출토)을 비롯 65대 이세선(李世選 1기), 79대 이창조(李昌肇 5기), 110대 이의풍(李義豊 2기), 120대 이윤성(李潤成 5기), 139대 이방일(李邦一 3기), 145대 이윤경(李潤慶 1기), 169대 이완식(李完植 1기), 182대 이희경(李熙絅 2기) 통제사의 것으로 밝혀졌다.(통제사 대수는 충렬사 소장 '통영선생안(統營先生案)' 기준, 3기는 이름미상)
 
이들은 모두 48대 이지형 통제사의 후손으로 1대손 이세선, 2대손 이창조, 3대손 이의풍, 4대손 이방일, 5대손 이윤성 이윤경, 6대손 이완식, 7대손 이희경 통제사이다.
 
 
아직 비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12대 이정표(李廷彪) 통제사, 54대 이지원(李枝遠) 통제사, 133대 이방수(李邦綏), 151대 이윤겸(李潤謙) 통제사, 173대 이응식(李應植) 통제사 역시 전의이씨 집안이다.
 
전의이씨는 통제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왕족 전주이씨 28명을 제외하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덕수이씨, 신립 장군의 평산신씨와 더불어 14명(또는 14회)의 통제사를 배출한 무반의 3대 명문집안이다.
 
이 중 12대 이정표 통제사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지형 통제사와 같은 전의이씨효익공파(全義李氏孝翼公派)로 그의 직계로 기록되고 있다.
 
또 이들 비석이 한꺼번에 묻히게 된 경위 역시 이지형 통제사 집안의 족보, 즉 전의이씨효익공파보(全義李氏孝翼公派譜) 전성이씨비각사적 매치비(全城李氏碑閣事跡, 埋置碑)편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순조 3년(1803) 선정비와 비각을 세우는 것을 금하는 국가 영(禁令)에 따라 151대 이윤겸 통제사 때 흩어져 있거나 철거된 조상 비석 총 14기를 모아 묻었다고 한다.
 
이윤겸 통제사는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 선세 통제사의 비가 묻힌 곳이 여기임을 알게 함이로다"라며 그 기록을 또한 족보 내 전성이씨비각사적(매치비)에 남겼다.
 
또한 전의이씨 통제사 비석들이 모여 있는 그림인 '전성비각도(全城碑閣圖)'에는 '오래된 비석 14기을 묻었다'는 의미인 '구비매치처 합 14좌(舊碑埋置處 合 14坐)'라는 표시가 돼 있다. 이와 함께 18기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아가 족보에 매치된 비석의 비문 내용들도 그대로 수록, 이번 발굴로 문헌과 유물이 완벽하게 일치, 더 큰 의미를 주고 있다.
 
이지우 경남대 사학과 교수(전 경남도문화재전문위원·한국근대사)는 "영조를 비롯 조선 후기 왕들은 백성들의 지출을 늘리는 선정비와 비각 건립을 줄곧 금지하고, 기존에 건립한 선정비의 철거를 명했다. 당시 6대 9명의 통제사를 배출한 명문 전의이씨에서 앞장서 선정비를 철거하고, 이를 땅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현장 조사에 나선 장윤정 경남대 사학과 교수(경남도문화재전문위원·한국고고학)는 통제사 비석을 묻은 이윤겸 통제사보다 후대인 이완식, 이희경 통제사 비석이 함께 발굴된 것에 대해서 "이미 이윤겸 통제사 시절 한차례 대규모 통제사비를 묻었고, 매치비와 족보에 그 기록을 남긴 만큼, 후대 조정에서 금령을 내린 때나, 1895년 통제영 폐영 시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그 곳에 추가로 묻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문중 대표로 족보인 전의이씨효익공파보(全義李氏孝翼公派譜)를 완성시킨 이한국 전 전의이씨 효익공파종친회장은 "순조 3년 우리 선조 통제사들의 비석들을 이윤겸 통제사때 함께 매치한 것은 이미 족보에 다 나와 있었고, 문중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그 곳이 통영이라는 곳도 알고 그 당시 비석 배치도도 족보에 다 기록돼 있다. 하지만 통영 어디인지는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 회장은 "족보에 기록된 내용 그대로 통제사 비석이 발굴, 확인된 것은 무척 놀랍고 자랑스럽다. 문중의 경사이자 통영의 경사다. 비석이 옮겨져 있는 통영 세병관으로 문중 차원에서 달려갈 계획이다. 시나 문화재청이 자료를 요청하면 언제든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전성이씨비각 사적편의 기록과 그림을 보면 현재 발굴된 통제사비 말고도 18기의 비석이 더 있는 것으로 나타나 학계 추가 발굴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 지난 12일 문화재청이 인근 지역 정밀 발굴조사를 결정했다.
 
또 통영의 정체성으로 불리는 조선조 303년 208대에 이르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과 통제사, 통제사 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병행해야 한다는 학계 목소리도 높다.
 
발굴을 총괄하는 김시환 (재)경남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은 "비각 사적편 기록에 따르면 함께 묻었다는 이지원 통제사와 이방수 통제사의 비석이 아직 발굴되지 않았고, 원문 해석을 전문적으로 분석,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특히 족보 기록이나 종친회 분들의 증언대로라면 추가 발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화재청이 그 일대 정밀시굴 조사를 결정했다. 대대적인 발굴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지우 경남대 사학과 교수(전 경남도문화재전문위원·한국근대사)는 "통영으로서는 경사로운 일이다. 이번 발굴을 계기로 통제영과 통제사, 그리고 통영별로로 불리는 통제사 길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연구가 병행돼야 한다. 이는 곧 통영 정체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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