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금관악기 소리에 되도록 덜 방해 받도록 엇갈리게 배치했다.
지난 시간에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의 기본 원칙과 미국식 · 유럽식 배치의 장단점에 관해 알아봤지요.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의 또 다른 원칙은 중요한 악기를 지휘자 가까이 둔다는 것입니다. 현악기는 연주자 둘이서 보면대 하나를 보는 식으로 두 줄로 앉게 되는데, 지휘자와 가깝고 객석과도 가까운 바깥쪽 연주자가 안쪽 연주자보다 서열이 높습니다. 군대식으로 말하자면 사수-부사수 관계와 비슷하고, 이를테면 안쪽 연주자가 악보를 도맡아 넘기죠. 보면대 위치가 지휘자와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서도 서열이 갈려요.
 
관악기도 지휘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수석 연주자가 앉습니다. 목관악기 연주자가 많아서 한 줄로 앉지 못하면 플루트와 오보에가 앞줄, 클라리넷과 바순이 뒷줄이 됩니다. 이때 특수 악기인 E♭ 클라리넷, 베이스클라리넷, 콘트라바순, 오보에 계통 악기인 잉글리시호른 등은 수석 연주자보다 먼 곳에 앉지요. 이를테면 잉글리시호른 연주자는 오보에 수석 연주자보다 오른쪽에 앉습니다.
 
금관악기는 음량이 워낙 커서 작품 성격에 따라 배치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지만, 보통은 왼쪽부터 호른-트럼펫-트롬본-베이스트롬본-튜바 순이 됩니다. 오케스트라 전체 소리를 압도하곤 하는 트럼펫이 가운데쯤에 앉죠. 타악기는 음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악기인 만큼 작품에 따라 제각각인데, 가장 자주 쓰이는 타악기인 팀파니가 가운데 앉을 때가 잦습니다.
 
이런 배치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순 연주자입니다. 바로 머리 뒤에서 트럼펫이 '빠앙―' 소리를 내곤 하거든요! 운이 좋아서 트럼펫을 피하면, 머리 뒤에는 보통 트롬본이 만만치 않은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바순 연주자는 귀를 보호할 수 있는 특수 의자를 사용하기도 한다네요.
 
가수가 나오는 곡에서는 가수를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지휘자가 고민해야 합니다. 무대 맨 앞에서 노래하면 가수를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노랫소리가 오케스트라 악기 소리처럼 기능하는 작품이라면 오케스트라 사이에 서서 노래하는 편이 더 좋을 수 있지요. 그러나 이때 '바순 연주자의 고난'을 가수가 겪을 수 있는 게 문제 됩니다.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해마다 공연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가수 위치와 악기 배치를 그때마다 조금씩 바꾸면서 실험을 하더군요. 정명훈 지휘자 취임 이후 '합창교향곡' 악기 배치와 관련해 두 해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서울시향이 2009년에 사용한 배치를 소개할게요. 제가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연주회 평을 조금 인용합니다:
 
"합창단을 합창석이 아닌 무대 위에 두고 팀파니를 오른쪽, 나머지 타악기를 무대 왼쪽 끝으로 몰았으며 트럼펫은 트롬본 오른쪽으로 두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있는 독창자를 배려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독창자를 그 사이에 두어야 옳다. 그러나 타악기와 트럼펫 등이 무대 뒷벽 쪽 음향 고약하기로 소문난 예술의 전당과 만나 독창자를 헷갈리게 하니 문제다. 바로 지난해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독창자는 뒤에 투명 반사판을 쓰고도 모자라 손을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끝내 4중창에서 화음이 자꾸만 어긋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악기 배치를 이처럼 바꾸니 마법이 일어났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글쓴이는 실연을 들을 때면 처음부터 기대를 접곤 하는 4중창에서 뜻하지 않게 균형잡힌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음량을 크게 줄이기까지 했으며 […]"
 
오페라 공연에서는 얘기가 또 달라집니다. 무대 밑에 숨어 있는 좁은 오케스트라 피트에 되도록 많은 연주자를 들여 넣어야 하거든요. 이때 극장마다 공간에 맞는 악기 배치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오페라 극장은 유럽과 견주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훨씬 좁아서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오페라는 사실상 제대로 된 공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공연기획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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