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절대음감에 관해 알아 봤는데요, 이번에는 절대음감의 상대성(?!)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음이름에 따른 음높이는 시대마다 달랐지요. 높은 소리일수록 화사한 느낌이 나니까, 음악가들이 갈수록 높은 음으로 조율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440헤르츠를 기준음 '라'로 정해서 더는 높게 조율하지 못하게 국제 표준으로 못 박았고요. 그런데 당시 음악을 당시 악기와 조율법과 기타 관습으로 연주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니까, 현대 표준음에 맞춰진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음악을 듣다가 현기증이나 두통, 구토 등의 증세를 호소할 만큼 괴로워하더래요.
 
여기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드릴게요. 많은 연주자가 사실은 기준음 440헤르츠보다 티 나지 않게 살짝 높게 조율합니다. 보통 2~3헤르츠 정도 높고, 유럽에서는 445헤르츠까지 올리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는 442헤르츠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그리고 절대음감이 여기에 맞춰져 있죠. 제가 언젠가 비올라를 배운 일이 있는데요, 악기를 440헤르츠에 맞춰서 조율해 갔더니 현이 조금만 풀려도 선생님께서 곧바로 새로 조율을 해주시는데, 새로 조율한 음이 아무래도 표준보다 살짝 높은 것 같더라고요. 가만 보니까 440헤르츠에 맞췄을 때에도 선생님께서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조금 불편해하는 눈치예요. 아마도 절대음감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우리가 음악에서 조(key)를 따질 때 보통 C장조(다장조)를 기준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관악기 연주자는 악기 특성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클라리넷은 B♭조 클라리넷이 가장 흔하거든요. 또 여차 하면 악보를 보고 곧바로 조옮김을 해서 연주해야 할 때도 잦아요. 그런데 클라리넷 연주자가 절대음감을 얻으면 어떻게 될까요? 높은 확률로 'B♭조 절대음감'이 됩니다! 그러니까 실제보다 온음 높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런가 하면, 팀파니 연주자는 매우 특수한 음감이 있어야 합니다. 팀파니 소리가 너무 낮아서 알아채기 어렵지만, 팀파니도 음높이가 있는 악기거든요. 심지어 팀파니 여러 대를 놓고 선율을 연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팀파니라는 악기가 워낙 커서, 소리낼 수 있는 음 갯수가 연주 공간이 허락하는 만큼으로 제한되지요. 그래서 여차 하면 연주 중에 조율을 새로 해서 음높이를 맞추기도 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면 다 함께 큰 소리를 내는 대목에서 팀파니 연주자 혼자서 귀를 팀파니에 가져다 대고 뭘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바로 조율하는 거예요. 연주 중에 조율한답시고 음악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그 짧은 순간에 '묘기'를 부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팀파니 연주자가 그럴 때 조율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본 일이 없어요. 귀로 듣고 맞춘다는 얘기인데요, 그 낮은 음을 귀로 듣고 말이지요!
 
일반적으로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음높이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이 월등하게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끼리도 음감 차이는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해요. 색깔을 보고 색이름을 알아맞히는 일은 별 것 아니지만, 그런 일을 쉽게 한다고 해서 다들 비슷한 색채 구분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하지는 않지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의 색채 구분 능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하더군요.
 
제가 예전에 일했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선생님은 '해도 너무한 초절 음감'을 가진 분이었는데요, 기준음을 443헤르츠로 고집하면서 1헤르츠만 낮아져도 귀신같이 알아채더래요. 4분음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음악가 중에서도 의외로 제법 있고, 일반인 중에는 반음 차이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기준음 '라'를 440헤르츠로 놓았을 때, 그보다 반 음 높은 '시♭'은 거의 30헤르츠 더 높은 469.86헤르츠입니다. 사람에 따라 음감 차이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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