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는 자전거 꾼들이 좋아하는 시원한 바닷길이 있다. 해가 서산 너머 길게 빠지는 늦은 오후, 수륙터 길을 따라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다 보면 낙원이 따로 없다. 해질녘 평인노을길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해넘이를 바라보면 순간 넋을 잃게 된다. 자전거를 타기엔 짧지만 죽림 바닷길이나 화삼리에서 동암마을 가는 바닷길도 좋다.
 
하지만 통영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만한 곳을 꼽으라면 이 정도가 될 것이다. 나머지 길은 전문가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않는 게 '신상'에 좋다.
 
그러니 통영은 자전거보다는 걷기에 더 좋은 도시다. 사람과 차들이 주로 다니는 도심은 자전거를 타기에는 매우 위험하고, 도심이든 외곽이든 자전거 전용 도로와 주차장을 만들 여유 공간도 거의 없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덴마크의 자전거 행복도시를 배경으로 '자전거는 운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고, 자신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전진하고 있다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내 발로 결정하고 있다는 쾌감이 있다'고 썼다.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에겐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통영에서 출퇴근 시간과 여가를 이용해 걷다 보니, 자전거보다 걷는 게 더 자유롭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쾌감이 훨씬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라. 읍면지역이 아니면 통영의 중심인 세병관과 중앙시장에서 걸어서 가지 못할 곳이 있는가? 동으로는 청마문학관을 지나 이순신공원과 RCE자연생태공원까지 걸어갈 수 있다.
 
서쪽으로는 착량묘를 지나며 잠시 묵례하고 경상대까지 걸어가도 그리 힘들지 않다. 해저터널이나 충무교와 통영대교를 건너 봉평동, 미수동까지 갈 수도 있다. 마음먹으면 용화사나 도남동까지 내처 걸어도 좋으리라.
 
북쪽으로는 토성고개를 넘어 김용식 김용익 기념관을 지나 시청 쪽으로 가거나 무전동까지 걷는 길도 그리 나쁘지 않다.
 
걷기 좋은 도시 통영을 만들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2014년 "통영길문화연대"에서 발표한 <보행환경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통영의 길들은 아직 보행자와 그리 친숙하지 않다.
 
하지만 부족한 가운데, 시내 끝에서 끝까지 걷기가 부담스러우면 중앙시장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고 나머지 구간만 걸어도 좋다. 빠른 걸음으로 운동하거나, 쉬엄쉬엄 걸으면서 아름다운 통영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삶의 여유를 즐기다 보면 잊었던 꿈도 되찾게 된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가을이 멀지 않았다. 두 다리로 걸으며 진짜 통영을 만나보자.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