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3일간 주민들 증언 채록, ‘문화관광복합형 섬’ 기대

 
지난 11일 한산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한산도 추봉·용초 포로수용소 기록화 사업 용역’과 관련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지역구 의원인 손쾌환 통영시의원을 비롯 최재형 한산농협장, 통영시 문화예술과 김철호 문화재관리담당, 추봉·용초 주민 3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한산도 추봉·용초 포로수용소 기록화 사업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전갑생 책임연구원과 아시아연구소 김민환 선임연구원,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가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7월8일부터 오는 12월4일까지 진행되는 용역에는 예산 2천1백만 원이 소요된다.

전갑생 책임연구원
이날 전갑생 책임연구원은 과업지시 및 조사범위, 한산면 용초·추봉도 수용소 현황, 주요사건일지, 연구용역 진행상황, 활용방안 제안 및 의견수렴 순으로 설명회를 진행했다.

특히 추봉·용초 포로수용소의 인문학·역사적 배경 및 지리적 특성을 비롯 두 포로수용소 건물배치 및 연혁과 기록자료, 현장답사 및 현황조사, 현지인 및 관계자 증언, 주요 역사기록 원문·번역 및 출처 명기 후 보고서에 수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산면 용초수용소는 ‘연합군 제1수용소 하부1B 수용소’라는 정식명칭을 소개하며 전체 3개 구역, 총 16개 수용동과 1,2 구역 각각 4개 수용동, 3구역 8개 수용동과 1953년 5월9일 당시 북한인민군 장교 출신포로(7,199명), 경비인원(미군210명, 한국군1,120)이 포로들을 관리했다.

또 1B수용소 사령부, 보급장, 급수장, 한국군 경비대 막사, 분리시설(영창), 사병클럽, 위병소 및 의료치료부대 등 주요기구 및 시설물이 있었다.

한산면 봉암(추봉)수용소는 ‘연합군 민간인 억류자1C수용소’라는 정식명칭으로 전체 2개 구역, 총 16개 수용동에 각 구역 8개 수용동이 존재했다.

1953년 5월9일 당시 민간인 억류자(8,851명)와 경비인원(미군201명, 한국군1,013)명과 1C수용소 사령부, 보급창, 급수장, 한국군 경비대 막사, 초단파 통신대, 사병클럽, 의료치료부대 등 주요 기구 및 시설물이 존재했다.

이밖에도 전갑생 연구원은 △잔존 유적지 정비 및 전체 안내도, 표지석 △추가 사진 및 동영상 수집·편집·제작 △홍보 동영상 제작 및 기록 또는 자료관 건립 향후 2년 정도의 사업 시행이 필요하다며 3단계에 걸친 단계적 활용방안을 제언했다.

전 연구원은 “용초도는 전쟁포로수용소이며 추봉도는 연합군 민간인 억류자 수용소로 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그 부분이 나중에 기록하는 사업안에서 각 수용소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어떤 건물이 있었는지 등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2박3일간 한산도에 머물며 용초와 추봉도 주민들의 증언을 채록하고 현장 방문을 통해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다”이라고 말했다.

또 “용초와 추봉도 수용소의 역사적 의미, 장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지역사를 복원하는 의미와 주민생활 및 본토의 역사를 복원하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용초도나 추봉도 수용소가 실질적으로 적십자에서 처음으로 지원한 첫 사례로 굉장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런 사실들이 역사적, 세계사적 의미를 한 단계 높이는데 목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용초마을 주민 김두진씨는 “앞으로 이 사업이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고 수용소 흔적 현장은 가을에 낙엽이 지고 시야가 확보될 때 연구원들과 함께 동행 하며 발굴하는데 적극 협조 하겠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손쾌환 의원
손쾌환 의원은 “얼마 전 최재형 한산농협장이 용초도 포로수용소 주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해 다각적으로 노력중이고 역사의 증인인 주변의 어르신들이 살아계실 때 사업을 빨리 진행해야한다”며 “교수님들이 3일간 머물면서 주민들의 증언 채록을 비롯해 자료수집에 적극협조를 부탁드리며 지금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을 두고 한산면이 관광 활용을 할 수 있는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저 또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재형 한산농협장/ 한산면 용초.추봉도 포로수용소 주민추진위원장
최재형 한산농협장은 “용초도와 추봉도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다는 것을 대부분 잘 모른다. 거제 포로수용소와 비교해보면 우리보다 열악한 건물을 갖고 있는데도 성장했고 우리는 많이 뒤쳐져 있는 것 같다. 통영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다는 것을, 섬 주민들의 애환이 있었다는 것을 꼭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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