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잡는 해병'이란 말을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귀신잡는 해병대'라는 말만 들어봤지 어떠한 계기로 이러한 전설(?)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국가보훈처 공무원으로 입사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원문고개에 위치한 원문공원 안에는 6.25전쟁 당시 치열했던 통영상륙작전을 기리기 위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통영지구 전적비가 있다. 함께 통영상륙작전기념관이 있는데 여기서 '귀신잡는 해병'의 유래를 알 수 있었다.
 
1950년 8월 5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전장병 1계급 특진의 명예를 획득한 뒤 통영상륙작전에서(1950. 8. 17. ~ 9. 22.) 한국 최초로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적을 완전 격멸하자, 1950년 8월 23일 통영상륙작전에 대한 취재차 원문고개로 해병대(김성은 부대)를 방문한 미국「뉴욕 헤럴드 트리뷴」기자 '마가렛 히킨스'는 해병대가 통영에서 거둔 전과처럼 기습적인 양동상륙 작전으로 우세한 적군(북괴군 7사단 650여명)을 공격해서 적의 점령지를 탈환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고, 한국해병의 감투정신을 두고 "귀신이라도 잡겠다"(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는 기사를 널리 보도함으로써 '귀신 잡는 해병대'란 말의 씨를 뿌려놓은 계기가 된 것이다.

통영상륙작전이 일어나기 며칠 전 김성은 장군의 이름을 최초로 알린 전투가 있으니 바로 마산 진동리 전투이다. 마산 진동리 전투는 1950년 8월 파죽지세로 쫓기기만 하던 국군과 유엔군이 처음으로 진격하던 적의 예봉을 꺾고 부산진출을 시도하던 북한군을 저지한 전투다.

이때 국군 해병대는 북한군 6사단의 정찰대대를 궤멸시키는 등 혁혁한 전공을 전 장병이 1계급 특진의 영예를 누렸다. 그 중심에 김성은 장군이 있었다. 낙동강 공방전이 가열되기 시작한 1950년 7월 말 북한군 6사단은 마산을 통해 부산을 점령한다는 계획 아래 호남 지역에서 대우회기동을 개시했다. 북한군 6사단은 빠르게 진주를 점령하고 마산으로 향했다.

이에 미 8군 워커 중장은 대규모 반격 작전을 계획했다. 미 육군 25사단과 미 제5연대 지구 전투사령부에 배속된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와 육군의 민기석 부대 등을 동원해 저지 작전에 나섰다. 진동리지구에 투입된 25사단과 그 배속부대들은 진주를 탈환하기 위해 거듭된 패주를 멈추고 개전 이래 첫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 기간 중 한국 해병대의 김성은 부대는 8월 1일 새벽 고사리 지구에서 북한 6사단을 공격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김성은 부대는 8월 3일 전차와 사이드카를 앞세우고 아군 방어진지로 향하는 적 대대병력을 공격해 전차 2대와 트럭 4대, 지프 2대를 파괴했다. 6일에는 진동리의 미 27사단에 배속돼 적에게 점령당한 야반산을 공격해 탈취했다. 12일에는 중암리(함안군 군북면)로 이동해 패퇴한 적이 집결한 오봉산과 필봉을 북에서 남으로 공격해 일부 목표를 점령하는 등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진동리 전투는 유엔군의 첫 반격작전 승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약 2주의 전투 기간 동안 진동리 근처 고지의 주인이 19번이나 바뀔 정도로 격렬한 전투였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면서 북한의 서남쪽을 통한 부산 진입 전략이 좌절됐고 이후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진동리 전투의 승리가 있었기에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을 정도이다.

진동리 전투 그리고 통영상륙작전, 이들 전투로 대한민국의 해병대는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김성은 장군은 1951년 태극무공훈장, 미 은성무공훈장과 미 공로훈장을 받았다. 김 중장은 전쟁이 끝난뒤 인 1953년에는 해병학교장에 임명되어 해병교육단장을 겸임하며 정예 해병 육성에 주력했다.

1957년에는 해병 제1사단장에 부임해 오늘날 해병대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해병대사령관과 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돼 재임기간 중 한국군 최초로 구축함 도입, 합동참모본부 설치 등 군 전력 향상과 국가방위력 증강에 관심을 기울여 자주국방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김성은 장군은 하나님이 주신 직분 '장로'와 나라가 맡긴 해병대의 '장군', 국방부의 '장관'을 완벽하게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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