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버티는 것 이상의, 나다운 삶을 위하여" - <적절한 균형>을 읽고, 김보영

나는 독서모임 산.책 회원으로 우리 회원의 추천서인 이 '적절한 균형'을 의무감과 호기심에 선

택하게 됐다. 먼저 두꺼운 책의 외형에 놀랐고 그 속의 이야기에 한 번 더 놀랐다. 책 두께에 어울리는 흡입력으로 나를 그 이야기 속에서 며칠 동안을 헤매게 했다.

인도의 어느 시점. 전통과 변화 속에서 움직이는 개인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을 살아가고 있으나 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권력과 폭력적인 사회로 인해 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운명에 의해 정해진 자신의 길을 가는 것도 공간의 변화로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것도 결국은 같은 결과로 끝을 맺는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같은 삶. 주인공들은 비참함의 끝으로 점점 떨어지고 그 이야기 속의 나도 얼굴이 찡그려지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에 웅크리고 있다가도 갑자기 나의 현실과 비교해보고는 삐죽이 나온 입을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제 안심이다'라고 내뱉은 순간 뒤로 나자빠지고 이제는 행복에 대해 말하려는 순간 최악의 인생낭떠러지 속에 갇힌다. 작가는 이야기 속 인생에 동정이나 슬픔이 없다. 너무나 담담히 그럴 거라고, 현실은 아마도 더할 거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것만 같다. 이것은 이야기라고.

무시무시한 권력의 지도자가 공포(恐怖)를 이용해 자신의 짧은 영화(榮華)를 붙잡고 역사의 순간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습은 항상 보던 것이나, 그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개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따라가보니 그것은 계속되던 일상의 한 귀퉁이의 모습들이었다. 다만 내가 자주 볼 수 없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뿐이었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이시바와 옴, 다나와 마넥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다나가 낯선이에게 선뜻 남편과 아들이라고 부르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삶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같은 시간과 공간을 이용하면서 또 다른 가족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다나가 옴에게 분홍색 찻잔이 아닌 빨간 장미장식이 있는 찻잔을 내주면서 그들을 온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였때는 이대로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바랐다. 다나의 '부엌이 자신의 집에서 가장 슬프고 침울했던 공간이 웃음과 활력으로 넘치는 밝은 곳으로 바뀌고'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가자 온전한 가족이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혈육으로 이어진 공동체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으되 서로의 이야기에 무관심하고 각자의 고민과 불평만 늘어놓고 서로를 인정하지 않을 때는 남과 다름없다. 스스로 나는 과연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가 되물어 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시바와 옴이 결혼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다시 다나의 베란다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거지가 되어 다시 만났을 때는 다람쥐 쳇바퀴처럼 열심히 달렸지만 결국은 제자리일 뿐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르게 시작된 삶은 사회와 제도에 의해 균형잡히지 않고 비뚤어진 채로 묘한 안정감을 유지해나간다. 그 안정감을 깨려는 것은 죽음과 직결된다.

처음부터 달랐으니까 그 삶을 알맞은 균형으로 맞추어 놓으려고하면 거대한 지진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야기 중에 나라얀이 '존엄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지만 안타까운 희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살아남는 것 또한 미래를 위한 전진이고 가치있는 것이다. 삶이 점점 더 나빠져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삶은 그저 버티는 것보다는 나다운 삶을 사는 것, 유일한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 그것이 미래를 바꾸는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 김보영(36)씨는 독서모임 '산.책' 회원으로 "육아휴직 중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많이 가졌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며, 우쿨렐레도 배우고, 품앗이 공동육아도 하면서 진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며 "그래서 꿈이 생겼는데 나만의 책을 내는 것입니다.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중입니다(박노해 시인의 글 인용)"라고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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