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통영연극예술축제가 갓 막을 내렸다. 무더운 장마의 무거움을 싹 날려버리는 시원함을 선사해주고, 내년으로 미리 달려가 우리를 기다려주기로 약속했고,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보냈다.

통영 이야기를 담은 창작초연작 '술래야 놀자(이방인의 노래)'를 관람했던 소감을 얘기하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이 땅에 살았던 일본인들과 조선사람들의 삶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도남동 발개마을의 오카야마촌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이를 어떻게 연극으로 풀어냈을지 궁금했는데, 극적인 요소와 사실이 씨줄과 날줄로 잘 짜여 구성이 탄탄했다.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큰발개 마을에 살았던 소녀 술래가 잃어버린 '한'을 박수와 광대와 관객들이 다 함께 찾아주는 과정이다. 출연진과 관객들이 다 같이 '술래야 놀자~'를 외칠 땐 이미 목이 잠겨서 마음속으로만 외쳐야 했다. 마치 내가 그 시절 발개마을에서 술래와 함께 살았던 사람처럼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고, 끝내 펑펑 울고 말았다.

도남동의 옛 이름은 남포 또는 발개마을이다. 유람선터미널과 그 앞의 식당가와 주택가가 작은발개 마을이고, 통영국제음악당과 호텔 공사장 부근이 큰발개 마을이다.

한일병탄 이전부터 일본은 수산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통영에 어민들을 집단 이주시켰는데, 이미 1915년 통영에는 총 1,135가구 4,472명의 일본사람이 거주했다. 작은발개 마을에는 오카야마에서 건너온 일본인들의 마을이 형성되어, 73호가 거주하면서 멸치, 대구, 삼치, 고등어, 상어 등을 잡으며, 삼도수군통제영의 도시를 수산업전진기지로 탈바꿈시킨다.

이들은 오카야마현으로부터 토지 매수 및 건축, 어선 및 어구 수리 비용으로 엄청난 장려금을 받고 이주해왔다. 그들은 작은 발개마을에 일본을 그대로 옮겨놓다시피 했다. 일본인 전용의 심상소학교(현 남포초등학교)와 신사, 우체국과 전화, 순사주재소, 어업조합 등의 근대식 건물들이 들어섰다.

바로 곁 큰발개 마을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어업권과 생필품, 학교, 도로, 상하수도 등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술래가 '한'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생하게 잘 표현되어 있었다.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중고등학생들이 키득댄 장면들이 사실은 뼈아픈 역사적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선인 소녀 술래와 일본인 소년 히로시의 애틋한 연분이 싹트고 있었고, 급작스레 닥친 광복과 패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술래의 '한'을 건져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끝끝내 늙은 히로시는 소녀의 넋을 찾아 깊은 참회를 하고 소녀는 "괜찮아!" 위로의 말을 건넨다. 출연진과 관객들이 다 같이 떠나가는 배를 향해 손 흔들며 막은 내린다.

남은 건 이제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 떠나서 돌아오지 못하는 자들과 떠나보내고 갈 길을 잃어버린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하고, 화해하고, 함께 손잡고,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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