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단어는 '미르'란 다소 생소한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르'는 용(龍)의 순 우리말이다. 그 예스럽고 아름다운 말이 이젠 가장 추악한 말이 되어버렸으니 세상을 탓해야 하나, 권력을 탓해야 하나,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필자 역시 행정안전부에서 제1차관까지 지낸 사람으로서 이번 사태를 보면서 참담함을 금할 수 없고 일견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범인의 눈높이에서 최고 권력의 도덕성을 믿고 있는 사이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은 단 며칠만에 800억원이란 거금을 거두었고, 권력 뒤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최태민에서 이어진 최순실과 최순득, 그들에게서 다시 정유라와 장시호 등등 끝없이 이어지는 추문의 고리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 억장 무너지는 것은 그 대책 없는 국정농단의 중심에 최고 권력자가 연계되어 있다니 정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다. 국격은 땅에 떨어지고 국민은 배신감에 떨고 있다. 세월호라는 험난한 질곡을 건너오면서 공무원사회도 전보다 한 단계 발전한 업무시스템과 도덕성으로 재무장되었으리라 믿었건만 더 허약해진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다.

대한민국은 시스템으로 움직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선진국은 한 사람의 권력자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지 않는 안전장치를 가진 국가를 말한다. 이러한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고 작동한다면 오늘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한국은 시스템이 무너진 나라였음을 확인한 꼴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교훈을 얻고 있다. 혹독한 시련이 왔다고 해서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언제까지나 남 탓만 하며 싸우고 있을 수는 없다. 우리 민족은 이런 위기 때 마다 극복의 지혜를 발휘해 오지 않았던가. 몽고군의 침입 때나 임진란이 왔을 때 임금은 몽진을 했지만 백성들은 기꺼이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다.

IMF사태 때엔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금모으기 운동을 벌여 난국을 헤쳐가기도 했다. 이러한 자랑스러운 극복의 역사가 우리의 미래를 제시해 주고 있지 않은가. 문제가 있는 부분은 철저하게 조사해서 원칙에 맞게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우리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다. 문득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장발장이 생각난다.

그처럼 작은 도둑은 단죄하면서 정작 큰 도둑은 적당한 선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완화할 헌법개정문제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견제와 균형을 이룰 통치시스템을 확실하게 재정립해야 한다. 또다시 이번과 같은 불행한 사태로 국민이 고통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하나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최순실이 최고권력 주변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최순실은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전국 곳곳 어디에서나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우리는 지방권력이 부패할 개연성은 없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미연에 방지할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해당 지역민들에게 들이닥칠 수도 있는 피해를 미리 예방하고 지역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은 중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권력에 대한 감시의 눈이 약하다. 그리고 온정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인간관계가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래서 권력의 집중화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등 지역민의 민심에 의해 선출되는 권력일수록 이러한 집중화 현상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장치로서 지방의회와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를 포함한 시민의 눈을 들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무겁게 중지를 모아 논의의 장을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

공인은 중앙의 문제를 통해 지역을 돌아보고 지역을 보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을 길러야 한다. 공익에 대한 철저한 개념과 도덕성은 공인의 가장 기본적인 역량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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