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서 '환관정치(宦官政治)' 논란이 뜨겁다 못해 온몸이 데일 정도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환관정치의 폐해는 고스란히 백성(국민)들에게 그대로 오롯이 전가되었고, 그 중심에 섰던 자들은 반드시 역사의 준엄한 심판과 함께 그 말로도 처참했다.

일개 한줌도 되지 않는 환관들이 국정을 뒤 흔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각 그 시대마다 '권력'에 눈멀어 맹종했던 소위 '사이비 엘리트 집단'들의 철저한 이해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툭 까놓고 얘기하자면, 환관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정치 관료가 아니다. 오직 '권력의 주구'일 뿐이다. 따라서 비속어의 대명사 "** 모르는 자들이다"라고 규정해도 심한 무리는 아닐 성 싶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환관들의 국정농단은 국가의 큰 위기를 초래했거나, 급기야는 멸망으로 이어져 온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세계적인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현주소는 '사회적 가치'는커녕 '옹호'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 지를 묻고 싶을 지경이다. 사회적 가치는 국민들이 쌓아올린 찬란한 금자탑이다.

이 금자탑을 한낱 보잘것없는 권력의 주구들이 대한민국을 '분탕 질'해버렸으니 이 기막힌 상황 앞에 한 때 우리 국민들은 '멘붕'으로 빠져들기도 했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봉건사회의 '관직'인 환관은 존재하지 않는다지만, 권력의 '호가호위(狐假虎威)' 측면에서는 그 성격과 본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모양이다.

'환관(宦官)'과 '내시(內侍)'는 원래 구별되는 존재였다. 환관이란 직종은 과거 왕정국가라면 그 명칭만 달리 했을 뿐 대다수 문화권에서 존재해왔다. 내시는, 우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문관들로 구성된 '내시(內侍)가 따로 있었는데, 이들은 용모도 수려하고, 가문과 학식,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왕의 최측근(비서역할)엘리트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왕의 행차에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왕명의 초안 작성, 유교경전 강의, 왕실재정 관리도 하였으며, 때로는 왕명을 받들어 궐 밖 민정을 살피기도 했다. 그래서 이 때만 해도 '내시'는 당시 귀족자제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시(內侍)란 말 뜻 그대로 내부에서 활동하는 시종, 즉 왕의 시종을 가리키는 말도 된다.

그래서 환관 가운데, 왕의 측근에서 보좌하던 직책을 내시라고 부르게 된 셈이다. 이렇게 환관이 왕의 최측근에서 일하다보니 때로는 왕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왕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한 경우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진시황'을 보좌하던 환관 '조고(趙高)'다.

그는 제위를 맏아들 '부소'에게 넘기라는 진시황의 유언을 무시하고 둘째아들 '호해'에게 넘긴 후 부소를 죽이고 권력을 농단하기에 이른다. 권력이 일개 환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을 맞은 통일제국 진(秦)은 결국 통일된 지 15년 만에 멸망하고 만다.

또 간신의 대명사로 일컫는 '십상시(十常侍)'도 중국의 한나라 영제 때, 열 명의 환관들을 가리킨다. 십상시는 어린 영제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해 조석으로 주색에 빠지게 만든다. 영제가 성장한 뒤에도 십상시의 농간에 놀아나 늘 정치는 뒷전으로 물리자,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터진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반란이 장각(張角)이 이끈 '황건적의 난'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반란에도 십상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멋대로 '황제의 칙령'을 내리고, '매관매직(賣官賣職)'을 일삼는 등 전횡을 일삼다가 결국 원소(袁紹) 장군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한나라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삼국지의 무대가 되는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가 도래 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현대판 '십상시' 파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그의 <마누라 파동>이 대한민국을 너머 전 세계가 경악했고, 동시에 국격의 이미지는 엄청나게 실추된 지 오래다. 역사적으로 <환관=내시>는 성의 정체성은 남자다. 단지 남성의 생식기가 거세 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여전히 남자다.

그렇다면 <그의 마누라>는 분명 여자일 것이다. 아니 여자다. 그래서 그녀는 '환관의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강남 아줌마일 뿐이다. 더 정확하게는 손자까지 둔 할머니이다. TV를 통해 본 그녀의 모습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 환관들은 달랐다. 왜 그녀가 '매력적인 여성(?)'인가를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병대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패러디(Parody)' 해 본다면 이렇지 않을까. "누구나 정치 환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정치 환관으로 자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환관들은 대체로 대단히 발달된 '촉'을 지녀야 하는가 보다. 권력의 '실상'과 '허상'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동물적인 감각'을 말이다. 하기야 과거 환관들은 생식기가 제거 되었다보니 '삶의 낙'을 중독 된 '권력 맛'에서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환관들은 과거 환관에 비하면, 권력과 성욕을 다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빠지고 싶은 '달콤한 늪' 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리석게도 '역사의 교훈'을 우습게 여겼다. 역사는 늘 말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경고하고 있지 않았는가. '역사적 심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오늘따라 '햄릿'의 명대사가 생각나게 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니라"

조광현 = 학부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으며, 지금은 대학원에서 <정치행정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리고 (주)동하산업개발과 '해피데이 해피홀/뷔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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