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수 교수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학)

어릴 적 기억의 한 장면. 삼강오륜을 배웠을 때 그 내용보다 '벼리 강(綱)'이라는 글자에 더 끌렸다. 벼리는, '그물의 위쪽 코를 꿰놓은 줄로서, 잡아당겨 그물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부분이다. 그때의 흥분은 지금도 선명하다. 어린 나이에도 세상은 충분히 복잡해 보였다. 그 복잡한 세상 한가운데서, 움켜잡으면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벼리라는 게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의 안팎을 돌아보면 이 벼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남북갈등, 외교, 안보, 경제, 양극화, 교육 붕괴, 인구절벽, 청년실업, 노인자살률, 4차 산업혁명 등 어느 것 하나 간단치가 않다. 많은 문제에서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34개 나라 중에서 최악의 수준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런 문제들로 혼란스러워하던 내게 큰 힘이 되어준 책이 '새로운 100년'이다. 부제로 '오연호가 묻고 법륜 스님이 답하다'와 '가슴을 뛰게 하는 통일 이야기'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이 책을 읽었을 때의 첫 느낌은 한 마디로 "가슴이 다시 뛴다"였다. "고구려, 발해 멸망 이후 1,000여 년 만에 우리가 다시 동북아 지역의 중심국가로 일어설 수 있다"는 구절에서는 무릎을 쳤다. 뿌연 안개가 걷히고 새 희망이 샘솟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문제에 너무 빠져있음을 알아차렸다. 대륙을 내달리던 조상들의 시대부터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한 새로운 미래의 대한민국까지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제목과 부제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가 나아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사진을 펼쳐 보여주고 있으며, 그 핵심 과제로 통일을 제시하고 있다. 극도의 혼란 가운데 놓인 우리에게 통일이 바로 '벼리'인 것이다.

물론 통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안보위협과 성장동력 상실로 인해 정체 국면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성취함으로써 안보위협을 성장동력으로 전환하고, 국가의 분위기를 쇄신하여 교육개혁을 통해 4차 산업에 걸맞은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세계의 석학들과 유수의 국제기구들이 7,500만 인구를 가진 통일 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도 남북 통합이 시작되면 북한에 3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바 있다. 그만큼 통일 한국은 지구촌 최고의 블루오션이다.

그런데 이 책이 주는 감동은 단순한 전망이나 희망을 얘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6천여 년의 민족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의 가능성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과제를 치밀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국가도 개인도 '기'가 살아야 건강하고 부강할 수 있다. 수당의 백만 대군을 막아낸 것도 고구려인의 기상이었고, 고구려와 백제 몰락 이후 약소국인 신라가 세계 최강대국인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함으로써 실질적인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도 신라인들의 기상이었다.

그래서 저자 법륜스님은 민족적 열등감의 극복을 중요하게 꼽는다. 고대사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중국에 대한 열등감, 독립운동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아서 생긴 일본에 대한 열등감, 현대사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인한 미국에 대한 열등의식까지. 이 책을 읽고서 역사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배달 나라와 단군신화가 정말 '신화'인지, 상해임시정부와 청산리전투 등을 제외하면 변변한 독립운동이 없었던 게 사실인지, 미국의 도움으로 산업화에 성공한 대한민국은 왜 자발적 사대주의에 빠져들었는지.

지난해에는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중심으로 역사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꼽혔던 황하 문명보다 1천 년 이상 앞선 고대문명의 유물들이 만주지역에서 '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중국 박물관에 전시된 그 유물들은 우리의 신화가 역사적 사실임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을 탐방하며 맨손으로 황무지를 일구고 독립전쟁을 펼쳤던 수많은 우국지사의 기상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중국의 자존심 장안성에 버금가는 발해 수도 상경용천부 성터에 앉아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미·중 양대 강국의 각축 속에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지 못하면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 있다. 시쳇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력을 갖춘 대한민국이 조금만 슬기롭게 대처하면 이 위기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미·중의 대리 전장(戰場)이 아니라 미·중의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그 시작은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요, 진정한 통일은 새로운 100년을 꿈꾸는 데서 시작할 것이다. 가슴 뛰는 통일 이야기를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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