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밥장, 통영 당동에 보금자리 마련

국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본명 장석원)이 아버지 고향인 통영에 새로운 집을 마련해 지난 11일 집들이를 가졌다. 셰프의 요리에 아름다운 음악이 어울려 통영시 당동 다리밑에 마련된 밥장의 옥상이 하나의 무대가 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가 왜 굳이 통영으로 왔는지 궁금해 한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통영 출신이지만 할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대학에 들어가면서 통영을 떠났다.

그가 정착한 동네엔 대부분 어르신이 사신다. 내비게이션에 집 주소를 넣으면 엉뚱한 다리 위에서 안내를 마친다. 길눈 밝은 택시나 택배 기사들조차 적잖이 당황한다. 집 앞을 가로지르는 당동교 밑에서 찻길이 끝나기 때문이다. 사람만 지나가는 골목으로 들어와 우물을 지나 짧은 오르막을 올라야 비로소 집에 도착한다.

집은 80년대 말에 지었고 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셨다. 공간 디자인을 하는 친구와 반반씩 돈을 내 공동명의로 샀다. 몇 달간 공사를 거쳐 부처님 대신 사람 사는 집으로 바꿨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믿는 구석은 필요하다'는 뜻에서 '믿는구석통영'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집은 나와 내 친구의 믿는 구석이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다. 2003년 회사를 나와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줄곧 프리랜서로 살고 있다. 무게중심은 늘 일이었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돈이 있어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다. 마치 1 더하기 1이 당연히 2인 것처럼 결코 바꿀 수 없는 명제였다.

일러스트레이터란 회사나 개인이 원하는 수요에 맞춰 글이나 이야기를 그림으로 명쾌하고 재미나게 보여주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자면 돈을 내면 원하는 걸 그려준다. 그림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런데 10년이 넘다 보니 조금씩 달라진다. 하루가 멀다고 젊고 어린 작가들이 새롭고 멋진 그림을 쏟아낸다. 긴 이력은 되레 촌스럽거나 '지금, 여기'에서 밀려나 꼰대가 되어간다는 증거가 되기 일쑤다.

그림으로 먹고살려면 그림만 잘 그려선 안 된다. 고객들 비위도 잘 맞춰야 하고 인사도 잘해야 하고 약속도 잘 지켜야 하며 견적도 잘 뽑아야 한다.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다.

통영행을 결심한 건 3년 전의 경험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서울 구산동 버스 종점 근처 다세대주택 1층에 조그마한 상가를 샀다. 집에서 걸어서 불과 2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비용을 아끼느라 인테리어 업체를 쓰는 대신 그때그때 직접 사람을 불렀다. 공사를 마친 뒤 '믿는구석'이라고 이름 붙였다. 공식적으로는 작업실. 하지만 고객과 만나거나 친구들과 밤새 맥주를 홀짝거리며 수다 떠는 데 주로 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새로운 일이 아니라 '공간'이란 사실을. '내' 집이나 '내' 사무실이 없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집주인에게 꼬박꼬박 월세를 내야 한다. 밖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술 마실 때도 공간에 대한 사용료가 가격에 포함된다. 그런데 그게 너무 비싸다. 특히 서울은 말도 못 하게 비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없으면 이래저래 뜯기기 마련이다. 돈 벌어주는 부동산도 좋지만 돈 아껴주는 공간이 훨씬 더 필요하다. '믿는구석'을 열고서야 비로소 30년 살던 동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로소 담장에 떨어진 나뭇잎도 보이고 어린이 보호구역도 보인다. '동네'에 있으니 동네가 제대로 보인다.

'믿는구석통영'은 '믿는구석'의 시즌2쯤이라고나 할까. 친구와 함께 만든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을 해 먹으며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는 중이다. 통영 친구들과 서울 친구들이 함께 어울려 동네를 가꾸고 싶다. 나의 노동과 노동의 대가가 더 이상 엉뚱한 데로 새지 않기를, 느리지만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무게중심을 옮겨본다.

'비정규 아티스트 밥장'으로 더 유명한 '밥장'은 국내 3대 일러스트레이터 작가이자 북 칼럼리스트. 하루 수천 명의 방문객이 찾는 네이버 파워 블로거이자 조선일보 '밥장의 상상디자인', KT&G 상상마당, 매거진 'Brut' 그래픽 소설을 연재하는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티스트다.

최근 미수동에 위치한 초록우산 통영마을 전면에 밥장의 캐릭터로 지역아동센터를 안내하고 있으며 안전한 통학로 만들기의 수호신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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