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이 낳은 우리나라 당대 최고의 석학이자 문학인 중의 한 분이셨던 김열규 교수는 생전에 필자를 만날 때마다 늘 당신께서 거주하던 고성군 하일면을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이라고 자랑을 했다. 세상천지에서 자연 풍광이 아름답기로 제일이고, 주변의 청정한 환경이 제일이고, 물빛 고운 바다의 잔잔한 해조음이 제일이고, 그래서 사람 살기에도 제일로 좋아서 천하제일면이라 했다. 천하제일면을 줄여서 하일면(下一面)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교수의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 자신이 터 잡고 사는 곳을 세상의 중심이자 배꼽이라 여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흔쾌히 동의할 이는 많지 않겠으나 자란만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하일면의 금단마을, '경남고성음악학교' 교정에 와 서보면, 김교수께서는 왜, 다들 사람살기에 좋아서 몰려드는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의 후미지고 한갓진 갯가 하일면으로 귀향했는지 그 까닭을 알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외국을 두루 돌아본 김교수의 눈에 비친 하일면의 자연풍광은 순수했고 고성의 숨은 속살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워 목가적이고 서정적이고, 시적이고 음악적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몽환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마도 천하제일면이라고 했을 것이다.

금단이란 마을은 하일면사무소가 있는 그 주변이다. 생전의 김교수 댁을 일주일에 두세 번 왕래하면서도 별스런 관심 없이 그냥 스쳐 지나쳤던 마을이고 지명이다. 이곳에 폐교된 하일중학교를 리모델링해 2017년 3월 6일 한반에 15명 씩 2개 반, 전체 30명의 학생으로 공립경남고성음악고등학교를 개교했다. 혹자는 "음악학교를 개교하려면 윤이상도 있고, 정윤주도 있고, 국제음악제도 열리는 통영이면 모를까 하필이면 왜 고성이냐?"고 타박할 것이다. 설득력 있는 타당한 명분이나 예산관계상 신규건축은 하지 못하고 폐교된 학교를 물색하다보니 최적의 조건이 바로 이곳 금단 마을의 폐교된 하일중학교였다고 한다.

며칠 전, 이 학교를 방문하게 되면서 금단이라는 마을 지명과 음악학교 개교는 우연히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지명이 암시하고 간직하고 있는 마력 앞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움이 일었다. 금단琴丹의 금자琴字는 거문고다.

거문고 마을에 음악학교가 들어선 것은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 뒤 산이 가을 단풍으로 물들면 산바람 타고 단풍색 바람이 거문고 소리를 내어서 금단이라 했을까. 마을 뒤 산의 형상이 거문고를 닮았고 그 몸체를 붉은 나무로 덥혔기에 금단이라 했을까.

옛날 옛적, 금단 마을 뒷산 너머 상리면 가슬歌瑟마을에서 우륵이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불렀다는 구전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 보아서, 우륵이 거문고를 메고 동산재를 넘어와 자란만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 앉아 거문고를 켰었기에 금단이라 했을까. 금단 마을 지명을 나름대로 유추해 보는 것이다.

이 학교 안 진수 교장선생은 "경남고성음악학교가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은 예산문제로 도내 폐교된 학교를 찾다보니 고성 상리면과 하일면에 있는 두 학교가 대상이었고 그 중 여건이 좋은 하일면이 선정되었습니다. 개교를 한 후 이곳 지명을 살펴보니 금단이었습니다. 금단과 음악학교는 불가분의 관계라서 처음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벌써 지명에서 이곳에 음악학교가 들어서리란 것을 예시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했다.

그렇다. 이 학교 교정에 서서 바라보는 자란만 바다 물빛은 참 곱다. 그리스의 에게해 못지않다.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해조음이 '오르페우스'의 음성이 되어 음악학교 학생들의 귀전에 소곤거릴 것이다. "나의 후예들이여! 지상에서 나를 능가할 음악인으로 성장해 다오!"라고.
생각해 보니, 지명이 주는 그 놀라운 마력에 새삼 절로 탄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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