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 프랜시스·도로시 레가트, need와 want를 실천한 통영 여성기술 교육의 선구자

120여 년 전 통영에서 활동한 호주선교사들의 활동과 모습을 추억하기 위해 후예들이 2010년 10월 4일 충무교회 방문 모습. 호주선교사 100주년 기념비를 보고 감동하기도 했고, 자신들의 선조들이 활약한 통영호주선교사의 집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안타까움도 보였다.
근대식 통영여성기술 교육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미 프랜시스 선교사와 도로시 레가트 선교사.

호주 선교사들이 조선에 첫발을 내디딜 때인 17세기 말. 당시 우리들의 생활상은 어땠을까? 대한제국 때인 광무 년 부터 국민소득에 대한 통계가 이루어진 1897년의 소득은 9달러 였다. 반면 일본은 1,135달러, 미국 4,100 달러, 독일 3,134 달러 였다. 이러한 조선의 상황을 본 호주 선교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필자는 지금도 120여 년 전 우리와 비슷한 나라를 찾아 그때 호주선교들로부터 진 빚을 갚는 심정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에게는 열악한 실정의 선교지에서 흘리는 두 종류의 눈물이 있다, 하나는 지금 내 앞에 펼쳐지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보며 흘리는 눈물이요, 다른 하나는 이들의 생활을 보며 100여 년 전 우리 선조들의 극빈했던 상황을 떠 올리며 흘리는 눈물이다.
선교는 삶의 현장이라는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희생의 휴머니티한 드라마와 같다. 저들의 절실함(need)과 나의 희생적 원함(want)을 기독교적 사랑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주고받는 것이다.

통영은 바닷가를 끼고 있고 해상교통이 발달한 곳이라 그나마 좀 나은 편이기는 했지만 다수의 서민들은 여느 지역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박함에 시달려야 했고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의 눈동자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때 두 명의 호주 여성선교사가 통영에 부임해 온다. 아미 프랜시스(Army L. Francis) 와 도로시 레가트(Dorothy Fairlie Leggatt) 그리고 에디스 커어(Edith A. Kerr) 이다.

1928년에 도착한 레가트는 1941년 일제로부터 탄압을 받고 강제 출국 당했다가 해방 후인 1947년 9월 던(E.W.Dunn), 위더스(M. Withers) 선교사와 함께 다시 한국에 나와 부산, 통영, 거제도를 중심으로 성경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각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을 순회방문, 마을사람들은 위해 기도하며 격려했다.

또한 고아원과 나환자촌, 양로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보살피는 한편 경남 지방의 유치원 교육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녀는 선교영역 중에서 주로 영적인 부분을 맡아 따뜻한 인간애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심어주며 격려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온 프랜시스 선교사는 1924년 9월 조선에 도착하여 언어 공부를 마친 후 통영에는 1926년 부임 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돼 있다. 이 세 영역은 각각 33%가 아니라 100%로 이해해야 하며 모든 영역이 똑 같이 중요하다. 어느 한 영역이 무너지면 다른 영역에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호주선교사들은 이러한 부분을 중요시 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큰 가치를 두고 전인적 활동을 전개 했다.

레가트가 영적인 부분을 맡았다면 프랜시스는 사회적이고 육적인 부분을 담당했다. 프랜시스 선교사가 볼 때 통영에서 우선해야 할 일은 가난하고 천대 받는 사회적 약자와 고기잡이 하다 풍랑을 만나 남편을 잃은 과부들 그리고 장애여성과 매춘 여성들의 생계를 위한 일이 시급함을 깨달았다.

단순한 도움은 이들이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통영 대화정교회(현, 충무교회)를 중심으로 기술교육을 시켜 나갔다. 1928년 같은 해에 온 에디스 커어 선교사와 함께 가축을 기르는 영농기술과 바느질, 수공예를 가르치기 위해 산업반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이것이 통영에서는 최초의 여성을 위한 기술교육이었다. 프랜시스는 본국에 보내는 산업반 활동에 대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산업반은 우리 활동의 중요한 일로 이 지역에서 계속 부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버림받고, 사회의 가치 없는 곳을 차지하고 있으며, 장애여성과 매춘 여성 등 천대 받는 이 사람들을 사랑하며 돕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활동 목적은 의지 할 곳 없는 이들에게 보호처를 마련해 주고, 사회적 냉대와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짓는 죄와 수치의 생활로부터 구제되거나 그러한 생활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 생활하고 있는 어린 소녀들과 부녀자들을 도우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조선인들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왔다면 우리들은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 될 것이다, 노동의 신성한 가치는 타락하려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이러한 구제된 삶을 한국에서 예수를 위해 사는 노동자들에게 제공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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