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군사강대국이 아니요, 경제 대국도 아니요, 문화강국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 발해는 1천 년 전 세계 최고의 문화강국이었다. 수도 상경용천부의 중심을 내달리던 주작대로. 그 위에 섰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외성에서 황성에 이르는 그 길은 폭 110m나 되었다.

길은 시대를 말해주고 방향을 가리킨다.

비록 한 나라의 수도는 아니지만, 삼도수군통제영의 외성인 원문성에서 통영성에 이르는 길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길이다. 통영성을 드나드는 수많은 백성과 상인들만이 아니라 부임하는 통제사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던 곳이다. 대형 오방색 깃발들이 휘날리고, 그 뒤를 따라 취타대가 하늘을 울리고, 가마에 올라탄 통제사를 중심으로 수많은 군사와 깃발들이 행진하던 통영의 주작대로.

그 길의 대부분은 지금 인도와 차도로 이용되고 있고, 건물에 가로막힌 곳도 있다. 역순으로 보면, 중앙동의 통영성 남문, 동호동, 정량동, 해미당 고개, 무전동사무소, 보건소를 돌아 원문고개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구간은 옛 모습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지경인데, 보건소에서 원문성에 이르는 길은 실낱같이 남아 옛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다. 무전동 일대가 대부분 매립된 곳이기에 원문성을 빠져나온 길은 가파른 언덕을 따라 이어져 있었고 바로 아래는 바다였다. 조선 시대 고지도에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다. 14호선 국도가 아닌 그 아래쪽이다.

통영초등학교 후문 맞은편 언덕에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길을 찾아 들어갔다. 자그마한 숲속 오솔길이다. 길이도 길지 않다. 100m 남짓할까? 몇 발짝 가지 않아 밭을 만나게 되고, 폭 50cm도 채 되지 않는 길의 왼쪽은 축대도 없이 그냥 낭떠러지다. 붉은 흙이 그대로 드러난 길은 큰비에 무너질 판이다.

옛길 가운데 효자비 1기가 우뚝 서서 옛길의 자취를 증명하고 있다. 예부터 비석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하였다. 이곳에 즐비했던 효열비들은 위쪽의 도로변으로, 통제사 비들은 세병관 경내로 옮겨지고, 인적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사람과 사람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준다. 서로 닿지 않으면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은 길에 빚지고 산다. 길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길은 철저하게 사람에게 의존한다. 어미 새에게서 먹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만큼 취약한 존재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면 길은 곧 죽은 목숨이다.

이렇듯 길과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다. 조용한 옛길에서 붉은 흙을 밟고 서서 발해를 생각하며 통영을 꿈꾼다. 우리가 꿈꾸는 통영은 돈 많은 도시, 관광객이 넘쳐나는 도시가 아니라 삶이 행복한 문화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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