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석봉 시집 '밥그릇에 뜨는 달'…강재남 김순효 손미경 박우권 이지령 최경숙 헌정
지난 17일 표석봉 시인 출판기념식 당일 타계, 물목문학회 눈물의 출판기념회 진행

낙목한천,
인연의 끈 놓지 못하고
매달려 있는 저 나무의 고엽
그 아래
똬리 틀고 푸성귀 몇 묶음 보듬고 앉아
시린 세월을 앓고 있는 목도리 두른
노쇠한 짐승의 입술이 퍼렇게 물들고
푸성귀 떨이로 모두 건네고 바꾼
지폐 몇 장
세다, 세다 손이 시려 엇갈리는
마지막 계산에
아득해지는 생의 시린 끝머리
계절 따라 세찬 바람에 추락하는 고엽 몇 잎
짐승의 가슴에 얹히는 떨리는 무게
너무 가벼워 시려오는
슬픈 짐승의 털목도리 위에 안기는 눈송이
눈물이 된다. 눈물이 된다. 눈물이 된다

<표석봉 시인의 시집 밥그릇에 뜨는 달 중 '풍경'>


평소 시 쓰기를 사랑하고 책 보기를 좋아해서 글을 쓰는 후배가 생기면 한달음에 책을 사서 선물하던 표석봉 시인.

그는 시 쓰기를 "물관 속 물 길어 올리는 두레박소리 받아 적는 일, 허수아비로 서서 멀리서 바라보는 일, 이쪽과 저쪽에서 집을 짓는 일"이라며 섬세하고도 관조적인 마음의 붓을 품고 사는 시인이었다.

평생 詩의 집을 짓고 있는 그의 숙원 사업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는 시집 발간이었다.

하지만 79세.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후배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표 선생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 강재남 김순효 손미경 이지령 최경숙 시인이 누구랄 것도 없이 예산을 마련하고 편집과 교열 작업을 함께 했다. 모두가 표 시인으로부터 사랑의 책을 선물 받은 인연이 있고, 물목문학회에서 활동하는 동인들이다.

서평은 이들의 친구 최은묵 시인이 맡았고, 도서출판 에코통영 박우권 대표가 책을 펴내는데 재능 기부를 보탰다.

표석봉 시인은 통영에서 출생, 2002년 문예비전에 조병화 선생 추천으로 등단, 2004년 한국생활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조선일보가 주최한 희망편지공모전에 '작은 기도 큰 소망'이 선정됐으며, 한남일보에 3년간 칼럼 및 수필을 연재했다. 통영문인협회 부회장과 물목문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창작활동과 지역문학발전에 이바지 했다.

표석봉 시인의 첫 시집 '밥그릇에 뜨는 달'은 그 인생의 결실물이자 사랑의 산물이다. 평생의 시작(詩作) 중에서 75편의 시를 선정, 총 3부로 묶었다.

"시는 나에게 사랑이고 본능"이라는 시인의 말처럼 시집 곳곳에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과 진솔함이 그대로 나타난다.

시인은 통영바다 어느 하나의 섬처럼 자신의 몸을 프리즘으로 사용, 그의 눈과 손을 통과한 사물은 곧 시가 되고 따뜻한 울림이 된다. 그러기에 죽음에 대한 투명한 고뇌조차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옮겨가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담담함으로 귀결된다.

 

박태주 회장이 기념사를 하는 모습.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지난 17일 표 시인이 그토록 기다리던 출판기념식. 물목문학회(회장 박태주)가 모든 준비를 마친 그날 아침 주인공인 시인이 타계, 오후 4시 입관이 시작된 그 시각 눈물의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고동주 물목문학회 지도교수가 애도와 축하의 말을 동시에 하고 있다.


고동주 물목문학회 지도교수는 "표 시인의 간절한 소망이었던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비보를 듣게 됐다. 인간이 어찌 이리 허무한지 목이 메인다. 운명은 다하셨지만 우리들이 출판을 축하드리오니 저세상에서라도 위안 받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태주 물목문학회장 역시 "이런 출판기념식을 사실 처음이다. 선생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지만 선생의 시와 예술혼은 통영바다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다.

최은묵 시인이 표석봉 시인의 시 해설을 하는 모습. “표 시인은 자신의 몸을 프리즘으로 사용,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집을 짓는다”고 평을 하고 있다.


최은묵 시인은 "한 사람의 시세계를 담은 시집을 가장 먼저 읽어본다는 것은 참 행운이다. 자신의 몸을 프리즘으로 사용한 표석봉 시인의 시는 참 따뜻했고, 진솔했다. 시는 무엇인가 하는 고뇌와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맞닿아있는 시인의 삶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가슴 아픈 비보를 접했지만 이 시집으로 인해 선생이 통영 앞바다의 커다란 섬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석봉 시인의 시 ‘아무거나 차, 드실 분 무영탑으로 오세요’를 손미경 회원이 낭송하는 모습.
최경숙 회원이 눈물을 머금고 ‘인연’을 낭송하고 있다.
이지령 회원이 ‘작은 행복’을 낭송하는 모습.
김순효 회원이 ‘밥그릇에 뜨는 달’을 낭송, 선생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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