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문화유산에 대한 중요성은 근자에 들어 상당한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그 어느 도시 보다 통영은, 근·현대의 영화로운 시절에 의미 있는 자산들이, 곳곳에 고유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들의 값진 유형물들은 거의 이제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남아 있는 일부나마 보수 유지 보존하고자 애쓰는 면도 있어 흥미를 더한다.
예를 들어 근대시절 《호주 선교사의 집》 의 형체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따뜻한 운동의 일환을 넘어 설렘을 보탠다.

'호주 선교사의 집'과 관련해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서, 아름답게 시화시킨 이는 김춘수를 들 수 있다. 이에 해당되는 김춘수의 독특한 시편들을 통해서 아득한 그 현장을 짐작해 본다.

김춘수는 "다섯 살 때 다닌 호주인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던 유치원에 딸린 사택의 이국적 분위기에 매료되어 이를 동경한 기억"으로, 후일 생생한 체험기를 동원해서 시화시킨 것이 있다.
이를 통해 김춘수의 종교색깔 시편들을 더듬게 되면, 일률적으로 기독교 성향의 시류들이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정신적 한 부류로 생각되며, 한 사변적인 계기를 마련하는 것 같다.

"호주(濠洲)아이가/한국(韓國)의 참외를 먹고 있다./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에는/호주(濠洲)에서 가지고 온 뜰이 있고/뜰 위에는/그네들만의 여름하늘이 따로 또 있는데//길을 오면서/행주치마를 두른 천사(天使)를 본다"(「유년시(幼年詩)(1)」).

위의 「유년시(幼年詩)(1)에서 호주 선교사 이야기가 나온다. 이국적인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을 지어버릴 수 없다.

또 김춘수가 이곳에서 서양지식에 관심가지며, 기도했던 「예배당(禮拜堂)」 의 시를 보자.

"가시 덤불 울 새로/죽두화도 피어나고/아롱아롱 봄은/나비따라 오은다./주(主) 예수를 모시기엔 섬서ㅎ지 않느냐고/가녀린 손들을 둘러/꽃밭 하나 꾸며 두곤/속눈썹 깊숙이 남남이 접어 보면/아련히 하늘은 푸르기만 하였는데/열여덟 치렁머리 바다만큼 흘러가고/어드매쯤 오늘을/끼리끼리 뭉쳐서/목숨인양 닳던 이름 불러볼 줄 모르온다"〔 「예배당」(김춘수, 『구름과 장미(薔薇)』, 행문사行文社, 1948.9.1, 6쪽)〕

이 시에서 그가 다녔을 법한, 통영읍 시절의 예배당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곳은 유일하게 신식 교육을 받게 된 곳으로, 그로 인해 그의 유년 사고는 월등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의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앞의 시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현장들을 현명하게 기억해 풀어내고 있다.

벽(壁)이 걸어오고 있었다./늙은 홰나무가 걸어오고 있었다./한밤에 눈을 뜨고 보면/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회랑(回廊)의 벽(壁)에 걸린 청동시계(靑銅時計)가/겨울도 다 갔는데/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내 곁에는/바다가 잠을 자고 있었다./"잠자는 바다를 보면/바다는 또 제 품에/숭어새끼를 한 마리 잠재우고 있었다.//다시 또 잠을 자기 위하여 나는/검고 긴/한밤의 망토 속으로 들어가곤 하였다./바다를 품에 안고/한 마리 숭어새끼와 함께 나는/다시 잠이 들곤 하였다./*/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에는/호주(濠洲)에서 가지고 온 해와 바람이/따로 또 있었다./탱자나무 울 사이로/겨울에 죽두화가 피어 있었다./주(主)님 생일(生日)날 밤에는/눈이 내리고/내 눈썹과 눈썹 사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나비가 날고 있었다./한 마리 두 마리."(〔 「처용단장(處容斷章) 제1부(第一部)」 Ⅰ의 Ⅲ (김춘수, 『처용(處容)』, 민음사民音社, 1974.9.25., 112쪽)〕

그 당시 이 사변적 사실이 얼마나 인상 깊게 각인 되었던지, "회랑(回廊)의 벽(壁)에 걸린 청동시계(靑銅時計)가/겨울도 다 갔는데/검고 긴 망또를 입고 걸어오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호주(濠洲) 선교사(宣敎師)네 집에는/호주(濠洲)에서 가지고 온 해와 바람이/따로 또 있었다"는 것이다.
성스러운 "주(主)님 생일(生日)날 밤에는/눈이 내리고" 환상의 나비가 한 마리 두 마리 꿈결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 훤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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