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필자가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되었을 때 대학 동창인 문희상 비서실장은 큰돈을 내려 주어 중앙간선도로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금 통영시민과 관광객이 큰 혜택을 보고 있는 국지도 67호선(원문고개에서 도천동 터널을 지나, 통영대교로 이어지는 도로)을 국가사업으로 확정해 주었다.

통영 국제음악당은 당시 '윤이상 음악당'으로 하여 변양균 장관이 도와주었다. 그리고 사량도 상·하도 연도교 역시 같은 정권에서 예산확보를 해 주었다.

통영의 관광 프로젝트를 A3 용지 한 장에다 알기 쉽게 그리고, 예산 규모는 3조 4천억 원으로 표기한 그림을 노무현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 씨에게 주어 동생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였다(노건평 씨는 과거 동마산 세무서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었다). 건평 씨는 대통령의 말씀을 내게 전하기를 "기가 막힌 그림이다. 정부 예산으로 통영을 관광지로 만들겠다!"

그리고 노 대통령은 '전국어민대회'란 명목으로 바로 통영으로 내려와 주었고, 그 자리에서 "통영을 관광지로 만들겠다. 내가 직접 챙기겠다"라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이 연설은 KBS TV를 통하여 전국에 생중계가 되었었다. 따라서 이것은 대통령께서 전 국민과 통영시민에게 한 약속이 된 셈이다. 또한, 대통령은 '카프리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 그 위원장에 유홍준 청장을 임명하고, 여섯 명의 위원을 구성하였는데 '통영 시장을 넣어라'라는 지시에 의해 시골 단체장인 필자가 국가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권이 흔들리자 이 꿈들이 꿈으로 끝나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당시 시장이었던 필자는 그 후 '남해안 시대'라는 것을 주창하여 경남도, 부산광역시, 전남도를 움직여 '남해안권 발전 종합계획'(2010.2. 국토연구원)을 만들고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도록 하였다. 안상수 창원시장이 그 당시 국회 법사 위원장으로 있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이 계획을 류우익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사항에 '선벨트 프로젝트'라 하여 넣어 두었으나 4대강 사업으로 다시 뒷전으로 밀리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내용에는 통영에서 한산도, 사량도까지 다리를 놓게 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통영시민들과 전국민에게 한 약속을 잘 기억할 것이다. 우리 통영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통영 사람들께 했던 약속을 지켜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한 요구로서 필자는 세 가지 Project를 주창하고자 한다.

그 첫째는 해상 케이블카, 그 둘째는 도남동 신아조선 자리를 항남동과 다리로 연결하고 새로운 도시 설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술관을 들여놓는 일이다. 그 셋째는 수항루의 복원이다. 수항루는 1677년 숙종 3년, 윤천뢰 통제사가 창건한 것으로 왜적이 이순신 장군께 항복한 것을 기념한 건물이다. 왜적을 굴복시켜 항복을 받은 일은 일제 36년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역사적 쾌거인 것이다. 세병관 광장을 강구안에 거북선이 정박해 있는 곳까지 연결하고 그곳에다 이 누각을 복원하는 일이 필자의 꿈이다.

상상해보라.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 통영은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명치유신은 우리나라로 치면 통영이나 거제 같은 곳인 사쓰마, 조슈, 도사라는 남부 지역의 하급 무사들이 일으킨 혁명이다.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가스 가이슈 등이 그들이다. 이 세 사람 모두 꿈과 배짱이 큰 그릇들이었다. 이처럼 우리도 국가적 큰일을 할 수가 있다. 남해안 시대란 국가적인 큰 그림 속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통영 시민들께 해준 큰 약속 속에 우리 통영의 꿈을 담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0년 이후 통영의 기상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다시 통영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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