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세계 인식은 어디쯤 와 있을까? 여전히 분단국가의 변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세계화를 얘기하면서도 해산물 좀 팔아먹을 생각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우려를 떨쳐버리라는 듯 한 청년이 책에 자기 이름을 써서 내게 내밀었다.

'파밍 보이즈'. '농사짓는 청년'쯤 되겠다. 이십 대 청년 셋이서 이년 여 동안 12개 나라 35개 농촌공동체를 돌며, 배우고 체험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같은 이름의 영화 상영이 끝나고 영화관 복도에는 저자의 사인을 받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고, 나도 그 줄의 끝에 서서 서른 남짓 청년의 사인을 받았다.

영화는 세 청년의 무모, 발랄, 감동적인 여정을 담아낸 자작 영화였다. 2017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다는 소문대로 감동의 물결이 관객들 가슴 언저리를 맴돌았다. 아주 평범한 청년들과 인증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모두 들뜬 표정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경험은 평범하지 않았다. 세계의 유기농업과 농촌공동체를 누비는 그들의 패기는 무모할 정도로 당돌했고, 희망을 일구는 농부들의 흙빛 미소가 반가웠고, 여러 나라 청년들이 새로운 세상을 위해 밭을 갈고 있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영화가 끝나고서 들려준 도전의 배경 이야기다. "다른 나라 청년 농부들은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금해서 세계 일주를 떠났다. 농부가 되고 싶은데 비전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대화의 시간 끝 무렵, 통영 출신의 리더인 유지황 청년의 얘기는 더욱 놀라웠다.

"청년인 우리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땅도 없고, 자본도 없다.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청년 농업이 가능하도록 제도도 만들어야 하고, 사회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요구할 건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생활정치의 문제다."

'생활정치'라는 얘기에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새로운 성장동력, 청년 일자리, 6차산업으로의 농수축산업 전환, 일할 수 있는 권리의 보장, 균형 발전, 이 모든 것은 정치의 문제이다.

직업 정치인이 아니라, 생활인이 직접 뛰어들어야 하는 국민 모두의 삶의 문제인 것이다.

농사짓는 청년은 말한다. '농촌이 노다지다'. 노인밖에 남지 않은 농촌에서, 돈이 되지 않는 농업이 어떻게 노다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625 이후 1세대가 이룬 산업화와 2세대가 이룩한 민주화. 하지만 이후로는 갈 곳 몰라 방황하는 대한민국호. 이제 3세대가 새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말하는 노다지, 농촌과 어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은가. 청년들을 믿고 그들의 따스한 손을 잡아보자.

* 저자 주. 사진을 제공해주신 도서출판 남해의봄날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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