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룡 문화원장, 강구안 중요성 강조…병선마당에서 재현 복원에 관심 가져야
합조 때에는 경상·전라·충청 군선 548척과 장졸 3만6천여명 통영에 모여 훈련

한산대첩축제 메인행사중 하나인 통제영 군점수조(軍點水操) 재현 시나리오가 복원됐다.

김일룡 통영문화원장은 지난 14일 제56회 통영한산대첩축제 학술발표회를 통해 통제영시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수군들의 군기와 변선 등 제방 군사를 점검하고 바다에서 전선으로 전투하고 수군을 조련하는 수군의 군사합동훈련인 통제영군점수조의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이날 김일룡 원장은 현재 행해지는 군점은 통제사군점인지 이순신장군의 군점인지를 명확히 하여 복식과 각종 의괴 등을 시대에 맞게 재배열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재직한 통제사는 209명에 달하며 300년의 역사가 지난 온 만큼 가장 번성기인 영·정조시대를 중심으로 잡느냐 아니면 1593년 초대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장군 시대를 기준으로 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장군의 복장도 갑옷을 입고 완전무장한 ‘갑주(甲冑)’상태이거나 아니면 무관의 융복(戎服)을 입어야 하기에 시대상이 중요하다. 또한 현재의 군점은 통제사의 행렬이며 실제 군점은 세병관과 남문, 망일루를 거치는 통제사행렬을 통해 병선마당인 문화마당에서 행해지는 것이 옳으며, 바다수조는 현 강구안이 너무 많이 매립돼 전함들의 군사훈련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일룡 원장은 “군점 재현행사 시나리오를 복원하면서 세병관도 중요하지만 통영의 강구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강구안은 통영은 통영의 젓줄이며 생명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당시 군점행사시 사용했던 삼안총(三眼銃)의 실물을 공개했다. 김 원장은 “군점을 할 때는 장군의 근엄함을 되찾을 수 있는 위엄있는 행렬도 중요하며, 통제영의 자존심을 되살릴 수 있도록 학생, 일반인,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군점을 복원해야 하며, 이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후기 군점수조는 봄과 가을 2회로 나누어 개최했다. 봄에는 통제영 본영 앞바다에서 본영과 경상우수영을 비롯한 경상좌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의 수군 및 군선들이 합동으로 거행하는 합조(合操) 즉, 춘조(春操)가 열렸다. 총병력은 53개 고을 수령과 51개 수군진영의 장수들이 지휘하는 거북선 43척을 포함한 군선 548척과 장졸 3만6천여명, 군량 9만석으로 조선시대 관방의 최대 규모로 그 위용을 과시했다.

가을에는 각 도의 수영별로 열리는 추조(秋操)가 있었다. 결국 통영은 봄에 삼도수군이 합동으로 거행하는 춘조와 가을에 통제영본영 및 경상우수영 수군이 합동으로 거행하는 추조 등 매년 2회에 걸쳐 군점수조를 거행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군점수조를 열기 위해서는 약 1개월 전에 조정에 거행 날짜와 절차 등을 올려 임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군점을 행하기 전에는 한산도 앞바다의 진해여에서 죽은 왜군을 포함한 모든 장병의 넋을 달래는 망제를 지낸다. 훈련이 시작되면 현재의 미륵산봉수대와 한산도 망산, 북포루 등지에서 군점수조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를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군점 수조의 새벽이 되면 통제영 중군(中軍, 부사령관)이 훈련장인 강구로 출영하여 좌우정탐선을 앞바다로 내보내 적을 경계하고 각 전선에 깃발을 달고 진형을 갖추었는지 점검하고 세병관으로 올라와 통제사에게 직접 보고한다.

이후 통제사는 집무실인 운주당에서 말이나 교자에 올라 각종 기치를 앞세우고 대취타 연주와 함께 훈련장인 강구로 출영한다. 세병관을 지나 통영성 남문을 통과하고 수항루에 이르러 도열한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통제영 선소(船所 , 병선마당)로 들어선다.

이후 통제사는 기함인 좌선(座船)에 올라 강구안에 대열을 갖춘 전선들을 사열하고 비장(裨將, 수행비서)들은 각 전선에 올라 전선과 무기 및 집무의 정비 상태 군병의 상태 등을 점검한다. 또한 통제영 중군은 장령들에게 각자의 임무를 명령한다.

이날 학술토론회에서는 통영고유의 ‘병선마당’의 이름을 되찾아야 하며 군점 복원에는 통제사, 비장급, 집사 등 훈련된 전문성 있는 인력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매년 해왔던 통영취타대도 적극 지원하여 통영음악을 보존하고 이어가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군점재현은 1962년 한산대첩 군점분과위원회 김백중 위원장이 가장행렬로 첫 시작을 내디딘 후 1967년 조상범 교사의 <‘한산도’>라는 책자에 군점개요와 군점각본이 실리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1985년 조상범씨가 <충무시 ‘내고장의 전설’>에 군점홀기를 소개한 것을 통영군사와 충무시지에 옮기면서 전해졌다. 이후 김일룡씨가 2000년 <통제영 군점수군연구>, <통제사행렬에 관한 연구> 등을 통해 체계적인 연구서를 내놓은 후 보완을 거쳐 이날 시나리오를 발표하게 됐다. <성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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