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교육
“마지막까지도 지역 걱정하며 촌석을 꽉 움켜지고 소천”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 별세…체육, 수석, 관광업계의 선구자로 큰 업적 남겨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은 마지막까지 촌석을 쥐고 있었다.(김상환씨의 페북에서 퍼옴)

통영의 체육계, 수석계, 관광업계의 선구자였던 김세윤 전 통영시문화원장이 지난 20일 별세했다. 1932년생이니까 우리나이로 85세이다. 호는 돌을 좋아해 석촌(石村)으로 불리웠다. 김세윤 옹은 올해 갑자기 몸이 안좋아 큰 병원에 갔으나 시한부 설명만 듣고 투병하다 최근 경상대 호스피스병동에서 입원해 있다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 20일 오후 1시경 소천했다. 빈소는 숭례관 201호. 발인은 22일 오전 8시 30분.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고 숫자를 외워가며 이겨갔으며, 마지막까지도 지역의 한산대첩은 잘하는지, 지역의 문화 관광을 걱정하고, 정열을 바쳤던 수석이야기, 가족들의 안녕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고 전했다. 김 전원장은 생전 수석을 사랑해 마지막까지도 평소 사랑하던 촌석(손가락 마디만한 작은 수석)을 꼭 움켜지고 있었다. 결국 이 촌석은 선생의 빈소 술잔 앞에 놓여졌다.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은 마지막까지 촌석을 쥐고 있었다.(김상환씨의 페북에서 퍼옴)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은 어릴 때는 통영의 체육회 사무국장으로 지역 체육계를 평정했다 . 지역의 축구와 각종 스포츠를 즐기고 육성하는데 앞장서왔다, 젊었을 때부터 통영의 관광안내와 소개는 물론 지역을 외부에 알리는데 앞장서왔다. 방송국에서 통영지역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할 때면 늘 동행하여 재미있는 말투와 전설을 소개했다, 또한 일요산악회를 조직하여 매년 새해 해돋이 행사를 주관하며 시민들의 안녕을 빌 수 있게 했다. 일찍이 수석과 분재 등 자연예술분야에 눈을 떠 지역에 수석을 알리는데 앞장서 왔으며, 지역의 문화원장을 맡아 사랑방과 각종 자료정리에 힘써왔다

김세윤 전 문화원장은 수석문화를 보급시켜온 공로로 '대한민국 자연예술문화상'을 수상했다. 김세윤 전 원장은 일찍이 수석생활 하면서 1972년 한려수석회 조직을 창립해 이끌어 왔으며, 한국수석회 창립회원, 한국수석총연합회 고문, 경남수석회 창립멤버로 지역에 수석문화 보급에 앞장서 왔다. 수석전 개인전을 4회에 걸쳐 개최했으며, 통영시 근처에서 용석을 발견, 용석을 보급시키는 등 전국에 수석문화 향상시켰다. 근대 수석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 석촌 김세윤 전 통영문화원장은 한산대첩의 시발점 견내량 언덕에 몽돌하우스내 복합 문화공간 관해원(觀海苑)을 설립, 통영과 거제 문화 소통의 장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또한 통영문화원 선정 '2010 통영향토문화상'을 수상했다.

김세윤 전 원장은 1932년 통영에서 출생, 제4대와 제5대 통영문화원장을 지냈다.

특히 원장 재직 시절 통영문화원 발전 기금 조성은 물론 일본과의 국제교류, 학술발표회에 앞장섰다. 또 지역향토문화 발굴을 위한 각종 출판사업과 통영지역 봉수로 발굴 등의 향토사와 사료조사 등을 추진, 지역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최근에는 통영 해변에 위치한 송악 자생지에서 잎에 금빛, 은빛 무늬가 있는 금송악을 발견, 남부산림자원연구소를 통해 ‘통영금송악’이름으로 등록시키고 보급시키는데 앞장서왔다

<성병원 기자>

 

 

성병원 기자  hannews@chol.com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병원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