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서울 광진구립 ‘광진정보도서관’

기획 : 공공도서관, ‘책 읽는 도시’를 그리다
1회 : ‘책읽는도시 전주’와 2017 대한민국 독서대전
2회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 공공도서관, 광진정보도서관
3회 : 도서관이 된 도시 부천, 부천시립도서관과 도서관 네트워크
4회 : 공공도서관의 본질을 돌아보다. 군포시립 중앙도서관과 파주 교하도서관
5회 : 테마에 특화된 도서관, 파주 가람도서관과 전주 농업과학도서관
6회 : ‘로컬 아카이브’ 지역 문화와 역사를 담다.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과 제주한라도서관
7회 : ‘책읽는도시 통영’은 어디쯤인가. 통영시립도서관의 오늘과 내일

광진구립 광진정보도서관

“1800년대 중반에서 1900년대 중반에 이르는 동안 미국의 수백개 지역사회에서 시민들에게 문화적인 기록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하고, 계몽된 대중들이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료를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공공도서관들이 건립됐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대학이라는 도서관의 이념은 대중적인 관념이 되었다”

- 책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 서문 중

미국의 학자이자 도서관 전문가인 에드 디 안젤로의 저서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2006)은 오늘날 (미국) 도서관에 닥친 ‘공공성의 위기’를 경고하면서 도서관 본연의 임무에 대해 고민하자고 이야기한다. 공공도서관의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그 질문을 “문 앞에 한강이 흐르는 도서관”에서 던져본다.

 두 부류의 이용자 고려한 설계, 도서관 건물을 나누다

도서관의 3요소라 하면 ‘책, 공간, 그리고 사람’이라 한다. 즉, 도서관이란 “책이 있고, 책으로 인해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라고 건조하게 정의내릴 수 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무엇보다 먼저 공간적 요소에서부터 주목하게 되는 곳이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의 본류를 마주하는 도서관. 도서관 문 앞에 한강이 흐르는 곳이 광진정보도서관이며, 그 건축 형태 또한 특별하다.

광진정보도서관은 2000년 11월 개관한 광진구립도서관의 본관이다. 서울시 동편 아차산 자락에 위치했으며, 도로를 건너면 바로 한강변인 곳에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다.

도서관동과 문화관동을 연결한 구름다리

도서관 건물은 흔한 직사각형 형태가 아니라 1/4로 자른 원 모양의 도서관동과 타원을 반으로 자른 형태의 문화관동이 마주보며, 두 건물이 구름다리로 연결된 독특한 구조다.

도서관동에는 종합자료실, 멀티미디어실, 소강의실, 연속간행물 및 행정자료코너, 장애인코너, 어린이자료실 등이 있다. 문화동에는 수험생 및 학생들이 ‘독서실’로 사용하는 일반열람실이 대부분 공간을 차지하며, 다양한 강의와 문화 이벤트가 열리는 ‘무한상상실’도 있다.

수험공부를 하다가 복도에서 한강을 보며 스트레칭

즉, 책을 보러 오는 이용자의 공간과 학생 및 수험생이 요구하는 공간을 처음부터 완전히 분리해 설계 건축한 것이다. 공간의 분리는 전혀 성격과 목적이 다른 두 종류의 이용자 편의를 모두 고려한 결과다.

광진정보도서관 오지은 관장은 “건물 분리는 설계 단계서부터 사서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기에 가능했다”며 “도서관 본연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최근 몇몇 도서관과 같이 수험 ‘열람실’을 아예 없애는 것도 가능하나, 이용자의 요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용 패턴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공간을 나눈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광진정보도서관은 설계 단계서부터 한강 조망권을 고려해 두 동 모두 한강 방향은 유리창으로 꾸며졌으며, 한강을 내려다보는 형태로 건물이 지어졌다.

열람실에 앉아 책을 펼치면 책 너머 창문으로 한강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2000년 개관 당시만 해도 탁 트인 조망이었으나, 3년 뒤 강변북로의 천호대교 북단~경기도 구리시 구간이 개통되며 고가도로와 방화벽이 한강 조망을 일부 가리고 있다.

이처럼 독특한 구조와 이용자를 고려한 설계로 광진정보도서관은 지난 2001년 제19회 서울시 건축대상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강변 공공도서관, 장점이자 단점인 입지

그런데 대중교통 접근성은 이용자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한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광나루역이지만 전철에서 내려 10분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주변 도로가 협소하고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겨울철 도로가 얼면 버스 운행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오지은 관장은 “한강변의 우리 도서관 입지는 책을 읽으러 오는 이들에게는 장점이다. 강을 시야에 두고 독서할 수 있는 도시 도서관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공부하러 오는 이들과 취약계층에게는 단점일 수 있다. 사실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편”이라고 말한다.

접근 편의성은 공공도서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보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광진정보도서관의 시도는 어떤 것일까.

무엇보다 먼저 ‘상호대차서비스’가 있다. 광진구립도서관은 일찍부터 상호대차서비스를 시작해 지난 2008년 국가상호대차서비스(책바다) 실시, 자양제4동 도서관과 중곡문화체육센터 도서관 개관 직후 2009년 광진구 관내 공공도서관 상호대차서비스를 실시했다.

상호대차서비스는 방문한 도서관에 원하는 자료가 없을 때 협약을 맺은 다른 도서관에 소장 도서를 신청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프로그램으로, 한정된 예산의 지자체 공공도서관이 도서구입 중복을 피하면서 더 많은 종류의 도서를 소장할 수 있는 효과도 있다.

상호대차서비스를 통해 광진정보도서관의 20만2백여권 도서, 중곡도서관의 6만7천3백여권, 자양도서관의 2만5천여권, 구의도서관의 2만7백여권을 광진구 관내 도서관에서 교차 대출과 반납이 가능하다.

광진구립도서관이 선진적으로 상호대차서비스를 시작한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전국 기초지자체 공공도서관에 상호대차서비스가 시행되지 않는 곳도 많은 실정이다.

광진구 도서관네트워크

한편 광진구 내에는 광진정보도서관을 비롯해 중곡문화체육센터도서관, 자양제4동도서관, 구의제3동도서관의 4곳 공공도서관이 있고 공립작은도서관 15개소, 사립작은도서관 17개소가 있으며 광진정보도서관은 광진구 도서관네트워크의 중심이다.

오지은 관장은 “한강변의 우리 도서관은 여유 있는 분들에게는 찾아오기 좋은 곳일 수 있다. 그런데 도서관이 어디에 있든 찾아오시기 힘든 분들, 취약계층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공공도서관이 공공성을 놓치지 않으려면, 정보와 지식 취약계층에게 도서관이 찾아가야 한다. 도서관은 정보와 지식의 복지센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자체 공공도서관은 ‘지역성’을 놓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여건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떻게 지역 도서관이 다 같은 내용일 수 있겠는가. 지역의 개성과 수요를 반영한 운영이 필요하다. 광진도서관도 노령층이 많은 곳, 경제활동연령이 많은 곳은 테마와 프로그램을 각기 달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접근 취약성 극복을 위해 광진구립도서관은 관내 장애인학교나 지역 아동센터에 사서가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속 시행하고 있으며, 곳곳 작은도서관 순회사서 지원 서비스는 물론 전통시장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분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시장 안 시립도서관 분소에서 부모가 장보는 동안 아이는 책을 읽고, 상인들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이처럼 생활 속에 깊숙이 파고든 도서관을 통해 주민들은 “우리 도서관은 다르다. 다른 지역보다 낫다”하는 자부심을 갖는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곳, 공공도서관

광진구 주민들이 공공도서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저 책을 보거나 빌려갈 수 있는 공간을 넘어, 주민들의 지적 ‧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서관과 서점, 출판가에서 ‘사람책’이라는 이슈가 회자되고 있지만, 광진정보도서관은 그 말이 없던 때부터 ‘사람책’에 주목한 곳이다.

시니어자서전 프로그램

2012년 진행한 주민들의 ‘시니어 자서전쓰기’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예다. 환갑이 넘은 어른 20여명이 방송작가의 도움을 받아 20회의 강의와 토론, 글쓰기와 퇴고를 거쳐 각자의 자서전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내 화제가 됐다.

광진도서관의 문화강의는 명사를 초빙하는 일방적인 형태보다는 주민들의 역량을 활용하는 재능기부로 다양한 직업군의 이웃들이 강사로 나서고 있다.

광진구민 대학교수 경찰서장 등은 물론, 손맛 좋은 동네 할머니의 ‘김장 기술’까지 쉽사리 지나칠 삶의 기술도 재능기부의 영역이 된다. 다채로운 재능기부 강의는 주민과 주민이 만나는 지역공동체 유대감 강화의 계기가 된다.

도시농업학교 밭만들기
도시농업학교 수확나눔잔치

뿐만 아니라 광진정보도서관 옥상을 이용한 도시농업학교, 웹툰창작체험관 사업, 그림책작가 양성사업, 과학적 사고를 함양하기 위한 ‘도서관 메이커 랩’ 등등 주민들의 힘을 키우는 광진도서관만의 개성적인 프로그램이 매년 이어진다.

이같은 노력으로 광진도서관은 개관 직후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 2001년 서울특별시 건축상, 서울 시민만족도 최우수도서관, 2010년 도서관현장발전우수사례 문체부 장관상, 2011년 전국도서관평가 대통령상, 2012년 전국도서관운영평가 특별상, 책읽는서울 공로상, 2014년 전국도서관평가 대통령상, 2015년 광진정보도서관 무한상상실 미래부장관상, 2016년 전국도서관평가 문체부 장관상 등등

구립도서관 본관 광진정보도서관에 한정하고 굵직한 수상 실적만으로도 열 손가락이 넘친다. 선진적인 광진정보도서관을 찾아 견학한 곳은 지난해만도 87개 기관 2,374명에 달한다.

그러나 광진도서관을 설명하는 것은 ‘스펙’이나 수상 실적만은 아니다.

오지은 관장은 “선진지로 알려지다 보니 견학을 많이 온다. 그런데 대부분 도서관의 실적, 사업 등에만 집중하는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도서관 운영의 비전과 도서관 경영철학이 아닐까. 실적보다는 왜 어떻게 그 결과가 이루어졌을까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광진구립도서관은 “정보, 교육, 문화의 사회적 평등 실현으로 성숙한 시민사회 만들기”를 도서관의 미션(책무)으로 제시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도서관 가치를 창출하자!(We Make New Library!)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상상을 뛰어넘게 하자!”를 도서관의 비전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커뮤니티 중심축”을 도서관 목표로 밝히고 있다.

광진구립도서관 연차보고서

시민에게로 향한다는 광진도서관의 비전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광진구립도서관 연차보고서’가 도서관 로비에 상시 비치해 이용자들에게 제공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연차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357,726명의 광진구민분들께 2016년 광진구립도서관 운영결과를 보고드립니다”라고 큰 글자로 적혀 있다.

광진구민들과 도서관 방문객들에게 제공되는 도서관 연차보고서에는 도서관 운영 비전과 현황, 이용안내, 주요 사업 내용과 성과, 활동 분석 및 평가 내용까지 세세하게 담았다. 이 기사에 담은 광진구립도서관 현황 모두가 연차보고서에 기재된 내용이다.

운영 현황을 알기 쉽게 제공하는 공공기관이 국내에 과연 몇이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광진구립도서관의 ‘정보, 교육, 문화의 사회적 평등 실현’이라는 모토가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

 “도서관의 핵심 역량, 사서가 위기에 처했다”

계절마다 광진구립도서관이 발행하는 소식지에는 도서관 사서의 추천 서평이 실린다. 2017년 여름호에 실린 도서관 소장도서 서평 필자는 ‘광진정보도서관 사서 오지은’이다.

이 사서 오지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광진정보도서관 및 광진구립도서관을 총괄하는 도서관장 오지은이다. 그는 “도서관장 이전에 도서관 사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오 관장은 광진정보도서관이 지역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힘, 주민들의 자부심이 된 원동력 또한 “사람, 도서관의 사서”라고 강조한다.

광진구립도서관 오지은 관장 "공공도서관은 주민이 민주시민으로 성장발전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서의 역량이 중요하다"

그는 “광진정보도서관을 대개 한강변 입지와 독특한 건물 때문에 먼저 주목하지만 깊이 보면 결국 사람의 힘이다.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이며, 참여를 이끌어내고 기획하는 것은 사서”라며 “우리 도서관은 전국적으로 비교하면 사서가 꽤 많은 편인데도, 견학한 분들은 다들 업무량에 고개를 내젓더라. 하지만 일이 많다고 해서 다 같은 일은 아니다. 얼마나 사서가 창의성을 발휘하고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주민들과 적극적인 관계형성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주민들도 성장하고 사서도 역량이 발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 관장에게는 최근 고민이 생겼다. 정부(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때문이다.

현행법은 사서 3명을 두고, 도서관 면적과 장서수가 증가함에 따라 추가로 적정수의 사서를 배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최소 사서배치기준(3명)조차 지키지 못하는 도서관이 전국 40%가 넘는 실정에서, 지난달 문체부가 아무리 큰 규모의 도서관이라 하더라도 사서 3명만 배치하면 문제가 없도록 규정한 사서배치기준(안)을 발표한 것이다. 또한 예외 규정으로 연면적 660m² 이하거나 장서가 6000권 이하일 때는 사서 1명만 배치하도록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공공도서관 문 앞에는 ‘사서 인원 감축’이라는 위기가 닥쳐온 셈이다.

오 관장은 “현실과 기준이 차이가 나니까 현실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기준을 확 낮춰버린 격이다. 이번 사서배치기준(안)은 공공도서관의 서비스 수준을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 도서관의 핵심역량이 위기에 처했다”라며 “시민 여러분께서도 도서관 행정과 사서에 관심을 갖고, 지역에 더 나은 도서관 서비스를 요구하셔야 한다.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요구가 공공서비스를 개선시킨다”라고 말했다.

 

독서리더 양성과정

 

단편영화 창작 프로그램
그림책작가 양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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