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사라'로 90년대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광수 교수가 세상과 이별했다.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표현했던 마광수 교수를 음란한 사람이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음란물 제작 및 유포죄로 법적 심판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공적이 새롭게 평가받고 있다. 바로 시인 윤동주를 역사의 기억 저편에서 되살려내어 국민 시인으로 만든 이가 그였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청년의 고뇌를 진솔하게 써 내려간 윤동주는 우리 가슴에 별처럼 바람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잊히지 않는 청년 시인이다.

시대가 덧씌운 부끄러움을 '벗어 내리기' 위한 그의 처절한 몸부림은, 자신을 등불 삼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난바다를 헤쳐나온 이 땅의 주인들이 별처럼 추억하고 바람처럼 기억한다.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다.

이 땅의 수많은 청소년이 품고 되뇌고 읊조렸던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광복 후 발간된 이 시집의 서문은 정지용이 썼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나고 자랐던 윤동주는 정지용과 백석의 시에 심취했다. 윤동주는 백석의 시집 <사슴> 전체를 베끼어 쓰며 시를 공부했고, 정지용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모방시를 써 내려갔다.

백석 윤동주 정지용, 세 시인은 우리 가슴에 박힌 지워지지 않는 별이다.

백석은 난이를 좇아 통영을 찾았고, 정지용은 유치환과 함께 통영을 여행했다. 백석은 충렬사 계단에 앉아 손방아를 찧으며 시를 썼고, 정지용은 "나의 문필로는 통영을 표현할 수 없다"며 한탄했다.

한 사람의 삶과 죽음 너머엔 말로 다 표현 못 할 어마어마한 진실과 이야기가 숨어 반짝인다. 앞바다에서 명멸하는 항하사(恒河沙)의 윤슬처럼.

이별도 슬프지만, 이별을 택했던 이유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사회적 타살"

지난 한 세기, 우리를 질곡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던 숱한 어둠들. 억압과 굴종, 몰염치와 매카시즘, 이분법적 사고, 지배계층의 극단적 이기주의.

100년을 맞는 또 다른 이름, 윤이상.

옛 시인들이 하늘에 새기고, 흔들리되 사라지지 않는 풀들이 역사에 찍은 발자국에 이제 우리가 답할 때다.

비상하는 생각의 날개에 매단 사슬을 언제쯤 벗겨낼 것인가? 상상의 발목에 채운 납추를 언제
쯤 풀어줄 것인가? '창의'의 시대, 바다는 어디로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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