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싯개'란 지명을 들어보았는가.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와 마암면 곤기와 낙정 일대를 예전부터 '속싯개'라 불렀다. 이 '속싯개'는 속였고 또한 속았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누가 속였고 누가 속았을까. 거기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유명한 여걸들이 숱하게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고구려국모인 유화부인, 고구려건국의 조력자이자 백제의 국모인 소서노, 우리 역사 최초의 여장군인 연개소문의 여동생 연수영, 백제 여인의 정절을 빛낸 도미의 아내, 미색으로 서라벌을 울린 화랑들의 여왕인 미실궁주, 선화공주와 선덕여왕, 고려의 자주성을 지킨 목종의 모후인 천추태후, 고려시대 궁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 조선시대 자유연애를 추구한 선구자 박어우동, 현모양처의 모범이자 빼어난 예술가인 신사임당과 여류시인 허난설헌, 송도의 명기 황진이, 비장하게 죽은 논개,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 등 그 이름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고 뛰어난 여걸들이 많았다.

이 중에서 진주의 논개와 비견될 인물이 고성(이 당시는 통영을 포함)에 있었다. 바로 월이다. 어떤 이는 "논개와 비견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느니,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로 치부할는지 모르겠으나 논개는 달랑 적장 1명만 안고 죽었으나 월이는 적함대 26척과 3천 여 명의 왜 수군을 격파하는데 일등 공신이었으니 비견하는 자체가 오히려 무색할는지도 모르겠다. 향토사를 연구하고 향토역사에 애정을 가진 이라면 함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 그 지역의 지명이다. '속싯개'는 월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이 있다.

임진왜란 발발 2년 전, 고성읍 무기산(舞妓山) 아래 무기정(舞妓亭) 기생 월이(月伊)는 승려 복장을 한 왜의 첩자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승려의 언행을 수상히 여긴 월이는 그날 밤 술에 취해 떨어진 첩자의 바랑을 열어보니 조선의 바닷길과 육로의 정보가 담긴 지도가 여럿 들어있었다. 그 가운데 고성을 그린 지도를 발견하자 '왜의 첩자가 분명해. 그렇다면 이 작자는 내 부모를 죽인 원수가 아닌가' 이런 생각이 스쳐가자 월이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윽고 월이의 몸에서 소름이 돋아난다.

왜의 첩자임을 알아챈 월이는 지도를 조작하여 골탕을 먹이고 부모의 원수를 갚기로 결심을 한다. 당항만과 육지 건너편 고성만 바다까지 연결된 것처럼 없던 뱃길을 정교하게 한길로 그려 넣는다.

왜군은 입구가 좁고 퇴로조차 없는 이곳 사지로 왜, 무엇 하러 갔을까? 당항포로 들어갔던 왜군은 월이가 그린 지도를 믿고 당항포를 지나 소소포(지금의 간사지 일대)에서 소소강(지금의 고성천)을 따라 고성만 바다로 나아가 남해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소소강에서 뱃길이 없음을 알고 되돌아 나오던 중,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과 소소포에서 맞닥뜨려 치러진 해전이 1592년 6월5일 제1차 당항포해전이었다. 왜장은 뱃길이 없음에 속았다고 길길이 날뛰며 분개했고 이때부터 간사지 일대 소소포 앞바다를 '속이고' '속은' 갯가라는 뜻의 '속싯개'라는 지명 유래가 지금까지 맥맥히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날의 해전에서 패한 왜적의 머리 수백 두가 밀물 따라 소소포 두호리 쪽으로 밀려와서 이곳을 '두호, 머릿개'라 부르게 되었다. 월이의 충절과 기지로 당항포 대첩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니 제1차 당항포해전의 숨겨진 일등 공신은 단연 무기정 기생 월이다. 그럼으로 그녀를  가히 '조선의 잔 다르크'로 불러도 하등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필자의 졸저인 '조선의 잔다르크 월이'가 출간 된 후 재경고성향우회를 중심으로 '고성향토문화선양회'가 발족되었다. 이 단체는 '월이'의 충절을 기리고자 지난 해 8월에는 '월이초혼제'를 올렸으며 금년 10월21일에는 '월이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15일 진주교육대학 강당에서 '월이세미나'를 개최하여 월이를 학술적으로도 조명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향후 월이를 테마로 한 연극, 드라마, 뮤지컬을 비롯해 궁극적으로는 영화 등 영상매체를 통해 월이의 활약상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이처럼 지명이 품고 있는 보물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지역의 시인과 작가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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