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요구가 육체적 요구뿐만 아니라 마음의 요구도 충족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육체가 병을 통해서 일러주는 것이다. 병을 통해서 충족되는 우리의 내적요구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칼 사이먼톤의 말이다.

병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병든 마음을 세밀히 관찰해보면 병을 자기 스스로 불러들이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현실로부터 달아나고자 그 대안으로 병을 선택하곤 한다.

예를 들면 비만이 되는 심리적인 요인 중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어떤 여학생은 항상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을 입어야 했기 대문에 새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새 옷을 입고 싶어 언니보다 더 뚱뚱해지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살이 찌기 시작했고 '새 옷을 입고 싶다'는 그녀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또한 남편과 불화가 잦은 아내는 이유 없이 허리가 아프거나 또 다른 중병을 앓곤 한다. 남편의 학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병인 것이다. 이런 경우 남편이 멀리 떠나 버리거나 갑자기 사망하면 그 중한 병이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다.

세상만사는 자신의 신념대로 경험하게 된다. 여기에서 신념이란 영화의 필름에 해당하고 경험이란 스크린에 나타난 활동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밝고 고운 신념과 상념을 건강과 행복을 경험하게 하고, 어둡고 왜곡된 신념과 상념은 질병과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질병, 사고, 생활상의 여러 가지 고통은 부조화로 인한 불편한 신념이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믿고 있는 바가 나의 몸과 생활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말할 수 있다. 요는 현실은 마음의 반영인 것이며 생각은 현실의 청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질병 치료는 인간의 내면을 먼저 치유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명상의 대가 인도의 라즈니쉬는 "인간이라는 질병은 의학만으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명상(meditation)과 약(medicine)은 의료, 치료(medical)와 어원이 같다. 다만 명상은 육체와 정신적인 질병을 함께 치유하고, 약물은 육체의 질병만을 치료하는 것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전적으로 내면에 쏟을 필요가 있다. 외부로 향한 마음의 창을 닫고 자기의 내면으로 침잠해 보는 것이다.

이런 내면의 탐구를 하게 되면 우리는 무한한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게 되고 남에게 빼앗기거나 방해받지 않는, 진정 자기 자신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곧 참 건강과 치병의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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