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서점 '소소밀밀' 책방지기 구서보, 지혜

"엄마, 엄마랑 영원히 살 수 없는 거야?" 어느 날 문득, 딸이 내게 물어온 질문이다. 그때가 일곱 살 즈음이었을 거다. "아니, 엄마는 너랑 영원히 살 거야." 나는 아이에게 죽음을 부러 이야기하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끝도, 백설공주의 끝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어요'니까. 그 너머에 죽음이 있는데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말은 무책임하지만 포장하기 좋은 말이다.

마레에게 일어난 일
죽음은 무슨 색일까? 삶의 색깔은? 마레는 작지만 탐스러운 체리 하나를 손에 들고, 색을 터뜨리는 꽃망울처럼 색깔 위에 앉아 있다.

아마도 삶의 색깔은 다채로우며 생기가 넘칠 것이다. 마레의 탄생과 함께 색은 시작된다.

마레는 붉은 색인 삶의 옷을 입고, 초록을 누비며 성장한다.

마레가 가장 처음으로 뱉은 말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과자'다. 과자라는 말엔 '먹는다', '살아간다'라는 생(生)의 단어가 내포되어 있으리.

마레는 함께 '과자'를 외칠 수 있는 친구 같은 할머니와 자란다.

하지만 할머니가 쓰러지면서 모든 게 달라진다.

할머니는 말하는 법도, 노는 법도, 과자를 먹는 방법까지도 잊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할머니에게 망각이라는 옷을 입혀 준 것이다. 모두가 할머니에게 집중되었을 때, 별안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할아버지는 찻잔 하나를 깨뜨리고는 슬며시 이 세상과 작별했지요."

그렇게 죽음은 누구에게도 예외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눈물만 흘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작별인사를 하고 죽음을 받아들인 할머니는 그제서야 말한다. '과자!'라고.

아마도 할머니의 과자는 생에 대한 의지이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다가가도록 도와준 마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일 것이다.

나는 죽음이에요
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다름 아닌 죽음이다. 죽음은 생명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죽음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꼭꼭 숨어 죽음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지만, 삶이 삶이 듯, 죽음은 그냥 죽음이라는 어쩌면 가장 단순한 진리를 조화롭게 담아내었다.

죽음을 '영원히 행복하게'라는 말로 포장해 버린 사이, 아이도 훌쩍 커 버렸고, 나도 조금은 성장했다.

이제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의 엔딩처럼 영원히 살 수는 없지만, 점점 자라 어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늙고 죽는다는 것을.

그 죽음이 자리를 마련해 줘야 우리의 아이들이 태어나 자랄 수 있고, 그 아이들이 자라 삶을 살아가는 일이 영원한 자연의 이치라고 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소소밀밀은 성긴 곳은 더욱 성기게 빽빽한 곳은 더욱 빽빽하게라는 말로, 느긋한 글작가 소소아줌마와 꼼꼼한 그림작가 밀밀아저씨 부부가 운영하는 경주의 그림책 서점이다. 올 6월 경주 황남동에 2호점을 냈으며 다양한 북콘서트와 드로잉 수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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