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에 있던 삼군수군통제영이 두룡포로 옮겨지면서 통영항이 생겼음이 틀림없다. 여황산을 기점으로 동서로 갈라져 내려온 통영성곽의 가운데에 자리 잡은 세병관에서 내려다본 항구는 입구가 커다란 독 같은 느낌이었으리라.

전선(戰船)이 드나들고, 노 젓고 돛 달고 고기 잡던 어선들은 갈매기의 호위 하에 항구 목을 나가고 들어왔을 거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항구는 본 모습이 서서히 변해 서쪽이 메워져 동충이 되고, 병선이 대어졌던 선창골(船倉谷)은 흙과 돌로 채워져 지금의 오행당 골목으로 변했다.

내 어린 시절 항구의 기억이 생생하다. 섬에서 통통배 여객선이나, 사선을 타고 시내로 올라오면 배는 어김없이 좁다란 항구목을 지났다.

동충과 남망산 밑을 연결해 주던 나룻선과, 부산 여수 마산 등지로 오가는 대형 여객선의 주행 방향의 차이처럼 크기에서도 달라 무척 아름다운 풍경을 주면서도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때의 항구는 마치 독 안에서 발효된 음식이 석임할 때 나오는 숱한 거품처럼 크고 작은 배들이 움직였고 장사꾼들의 우렁찬 음성과 어부들의 운김, 아이들과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정겨웠던 항구를 서서히 압박하면서 그 형체가 바뀌었고, 질펀한 어부들의 노랫소리는 물론 섬사람과 장사치의 정겨운 흥정까지 다른 곳으로 돌려 버렸다. 항구 가생이를 따라 콘크리트가 처발리고 주차장이 들어가고 화장실이 볼썽사납게 냄새를 풍기고, 여행객이 던져주거나 먹다 버린 음식 쓰레기를 주워 먹는 갈매기와 비둘기가 사는 항구가 돼 버렸다.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배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항구를 더 메워 아름다운 통영항을 만들겠다고 한다.

-위정자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항구의 역할이 무엇인가? 답은 어린아이들도 다 안다. 그런데도 배가 드나들지 않는 항구를 만들고, 어부들의 노랫소리, 펄쩍뛰는 고기가 뜰채에 담겨 옮겨지는 모습이 없는 항구로 만들 거라니. 건물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안 되듯이 항구에 배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정이 있겠는가. 옛날처럼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가 아니더라도 지금처럼 어선들이 정박하게 하되 더 이상 매립하지 말고 현재의 모습에서 좀 더 정감이 있고 머물 수 있는 항구를 만들도록 해 보자.

배가 드나들지 않는 항구는 항구가 아니며, 항구가 없는 통영은 통영이 아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