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만든 것은 하늘이지만 별자리를 만든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어령 선생의 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어린 시절 즐겨 찾던 별자리를 발견하고는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별은 별이되 이야기가 가미된 별은 우리를 더욱 설레게 한다.

낮이 밝은 해와 더불어 일하고 생산하는 시간이라면, 밤은 달과 별과 더불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다. 사람의 몸은 음식을 먹고 살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야기를 먹고 사는 탓이다. 그러니 낮만 가지고는 삶이 완성될 수 없다. 낮과 밤이, 해와 달과 별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삶은 균형 잡히고 윤기가 흐르게 된다.

그러니 낮의 하늘보다는 밤하늘에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해가 지고 달이 뜨고, 해가 뜨고 달이 지는 순간은 이야기의 밀도가 가장 높다.

뭇 생명의 자양분인 해, 그 해가 뜨고 지는 순간만큼 소중한 순간은 없으리라. 밤을 가득 채운 이야기의 절정은 새벽달이요, 달이 떠오르는 초저녁은 설렘의 시작이다. 그러니 아무리 바쁜 날들이라도, 이 네 순간만큼은 일손을 잠시 놓을 일이다.

지구와 달의 운행 주기에 따라 일출과 일몰, 월출과 월몰 시각은 조금씩 늦어진다. 그러다가 보름 즈음이면 해 지는 시각과 달 뜨는 시각이 비슷하고, 달 지는 시각과 해 뜨는 시각이 비슷하다. 반대로 그믐 즈음이면 해와 달이 비슷한 시간대에 뜨고 진다.

이번 12월의 보름은 2일, 토요일이었다. 그 이튿날인 일요일 밤엔 오후 5시 13분에 달이 뜨고, 바로 2분 뒤에 해가 졌다. 다음 날 아침 7시 18분에 해가 뜨고, 10분 뒤에 달이 졌다.

이 절묘한 시간을 맞으려 매물도로 떠났다. 당금마을 바로 뒤편 언덕에 자리한 한산초등학교 매물도 분교. 지금은 야영장이 된 폐교 운동장에 서면 동서쪽 바다를 훤히 볼 수 있어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늘은 모든 걸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른 저녁 동녘 하늘은 두꺼운 구름으로 인해 달의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서쪽 바다로 가라앉는 해는 동쪽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더욱 붉은 기운으로 표현했다.

다음 날 아침 동해로 솟아오를 해도 지난밤 달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밤을 달려 서쪽 수평선에 다다른 보름달은 넉넉한 웃음으로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시간, 해가 서해 수평선에서 동해 수평선까지 지구 반대쪽을 부지런히 달리는 동안, 밝은 달빛이 운동장을 쓸어주었다.

연중 크기가 제일 작은 12월의 보름달. 모자란 듯한 보름달 빛에 얼굴을 비춰보며 벗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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