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거장 허스트, 나전 조약돌 2015년 이어 올해 2점 거액에 구매
'나전 공예' 한류 가능성, 통영…디자인과 기술에이전시로 세계 겨냥

 

얼마 전 이런 기사가 났다. 

2015년 봄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컬렉터 페어'. 행사를 주관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관계자들에게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나전 장인' 황삼용(57) 작가의 공예 작품 '조약돌' 연작 2점을 슬그머니 사간 이가 영국 현대미술 거장 데미안 허스트(51)로 밝혀져서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이 지난 9월 중순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첫 공예 아트페어 '트레조르 컨템퍼러리 2017'에서 황 작가의 같은 연작 2점이 또 허스트에게 팔린 것이다.

지난 10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 및 미술계에 따르면 현대적 디자인을 입힌 전통 공예가 한국에서 홀대받는 사이 세계적 컬렉터에게서 주목받고 있다. 황 작가의 모던한 나전 작품이 허스트의 러브콜을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허스트는 1990년대 세계 미술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 주자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작품으로 '현대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린다. 이 시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이면서 슈퍼 컬렉터인 그가 한국의 전통 공예 작품에 눈길을 주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조약돌'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던 '끊음질 기법'(자개를 가늘게 잘라 이어붙이는 기법)으로 제작됐다. 재료와 기법은 전통을 고수했지만 형식은 현대를 취했다. 나전 하면 상자 같은 가구를 떠올리는 틀을 깼다. 전통만으론 승부를 보기 힘들다는 생각에 장인적 기술에 현대 디자인 개념을 접목시킨 것이다.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황 작가의 작품은 당시 현지에서 단박에 2점이 팔린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영국 스위스 프랑스 미국 등 세계 각지에 총 17점이 팔렸다. 조약돌 연작은 줄곧 지름 60∼90㎝ 사이즈로 제작되다 성공 가능성에 고무돼 커졌다.

이번에 허스트에게 팔린 2점은 폭 1.8m, 1.6m로 덩치를 3배 키웠다. 가격도 각각 1억2000만원, 7000만원에 팔렸다. 고려 유물도 아닌 현대 공예작품이 1억원대 고액에 팔릴 수 있는 힘은 바로 디자인 변신에 있을 것이다.

황 작가의 작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동아시아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에서 구매해갔다. 하지만 정작 한국의 미술관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공예를 취급해온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사례는 'K공예'의 한류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다"면서 "아직 정부 산하 번듯한 공예전문 박물관 하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나전칠기 인생 50년을 맞은 필자는 너무나도 충격적이면서도 눈이 번쩍 뜨였다. 1950∼60년대 통영에는 시민 3분의 1이 나전칠기밥을 먹을 정도였다 인원이 2∼3천명이었다 하니 한집건너 나전칠기 공방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엊그제 같은 시절인데….

지금은 기성장인 10여 명을 비롯 몇 안되는 공방과 국비와 시비로 통영시가 추진한 기능공 양성 수업으로 배출한 이들만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것이 통영의 나전 현실이다.

통영부잣집 안방에는 자개농이 늘 자리잡았고, 통영자개상을 비롯 각종 나전제품이 부의 상징인 시절도 있었다.

명절이 가까이 다가오면 대다수의 공방들이 밤을 세워 일을 하는게 일쑤였고, 제품값도 미리 완불할 정도로 꿈의 시장이자 불경기가 없는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행정과 장인 모두 깊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조약돌 끊음질 장인 황삼용씨도 한국나전칠기박물관 손혜원 관장(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발굴한 인물이다.

손 관장이 디자인하고 황 장인이 끊음기술로 완성한 작품이 이태리 밀라노 트리엔날레, 영사치갤러컬랙트페어, 스위스 바젤공예아트 페어 등에서 고가로 판매될 정도로 나전칠기 공예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 

이제 통영에서도 디자인과 나전기술 에이전시를 통한 철저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현대적 디자인과 장인의 손길이 함께 어우러져 글로벌 시장에 도전한다면 통영나전칠기 옛 명성을 반드시 되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곧 통영의 세계화이자 후배 나전칠기 장인을 양성할 수 있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김종량<나전칠기 동서공예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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