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고래 떼가 짙푸른 물살을 가르며 해 뜨는 쪽으로 힘차게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물 위로 치솟아 오르는 이, 물살을 이끌고 앞서나가는 이, 꼬리로 허공을 휘젓고 물속으로 떨어지는 이, 반쯤 감은 눈으로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며 헤엄치는 이, 앞에서 뒤로, 뒤에서 앞으로 하나하나 세어 보고 손 흔들어 불러도 보고, 마냥 행복하다.

저 큰 짐승이 헤엄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지난번 보름달이 떴을 때는 바다에 떨어진 달빛을 부수며 노니는 고래 떼를 보느라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그날 아침 충혈된 눈으로 집에 들어갔다가 쫓겨날 뻔했다. 그런 눈으로는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는커녕, 빠져 죽기 십상이라는 지청구를 들었다.

딱 한 번 고래잡이에 끼여본 적 있다. 어른들은 만류했지만, 마을 최고 어르신께서 또래 중에서 유독 나를 지목해 바다에 들 수 있게 했다. 고래 떼는 기별도 없었지만, 어르신의 지시로 며칠 동안 온 마을이 엄숙하고 정갈한 분위기 속에서 고래 맞을 준비를 했다.

그 날 아침 큰 제가 열렸다. 천신과 해신께 고래사냥을 고하고, 고래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이윽고 서른 남짓한 장정들이 배를 나눠 타고 나가 해 질 무렵 마을로 돌아오기까지 바다는 온종일 팽팽했다. 하늘과 바다는 붉었다.

그 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두 다리가 뻣뻣해지고, 손에 땀이 잡힌다. 아, 그랬다. 종일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건 고래 냄새였다. 그 무엇이라고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깊고 먼 바다 냄새였다. 삶이라고도 할 수 없고, 죽음이라고도 할 수 없는, 어쩌면 삶이기도 하면서 죽음이기도 한 그 무엇이었다.

정작 마을로 돌아와서는 고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마을 앞 바닷가 전체가 고래의 살점과 뼈와 내장으로 그득했지만, 더는 아무 냄새도 느낄 수 없었다. 기억나는 건 그저 지독한 피로감뿐이었다. 땅이 바다처럼 흔들렸고, 바다가 땅처럼 고요했다. 어제가 내일 같았고, 오늘이 마치 태어나기 이전인 것 같았다.

고래 떼가 흔들어 놓은 바다가 평소 모습으로 가라앉을 즈음, 나도 몰래 바다 건너 북쪽 하늘로 고개가 돌아간다.

멀고 먼 평원지대에서 시작되었다는 얘기는 비현실로 들렸다.

소식은 바람 따라 날아들었다. 넘실대는 파도가 싣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먼 북쪽에 큰 나라가 세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 중에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엔 너무 먼 얘기였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을 주지도,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고래 떼보다 더 놀라운 소식이다. 환웅이라고 했다. 더 멀고 먼 나라에서 온 천손의 자식이라 했다. 청동으로 만든 거울과 방울과 칼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칼로 위협하고 빼앗고 때리는 대신 두루 평화롭게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든다고 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