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양미석

한창 이력서를 열심히 써내던 때가 있었다. 키와 몸무게, 부모님 직업만큼 이해가 안 되는 질문 항목이 바로 취미였다. 더듬더듬 글을 읽기 시작할 때부터 내 취미는 독서였다.

하지만 이력서에 독서라고 쓰는 건 너무 없어 보인다 싶었다. 그래서 실내 암벽등반(실제로 하긴 했다)이라든가 드로잉(이것도 하긴 했다)이라고 적어 내곤 했다.

이력서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에서 취미가 독서라고 말하기 애매하다. 취재를 하러 해외에 나간 기간을 제외하면 한 달에 열 권 안팎의 책을 읽는 편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같이 자투리 시간이 생기는 족족 책을 읽는다. 국어사전에서 '취미'를 찾아보니 첫 번째 뜻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취미로 읽는 책보다 '일의 자료'로 읽는 책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열 권 중 여덟 권 정도는 일 때문에 읽는 책이다. 읽기 싫어도 읽어야 하는 책도 있다.

때문에 오롯이 즐기기 위한 책을 선택할 때 예전보다 훨씬 신중해졌다.

제목만 보고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휙휙 담아 결제하던 예전과는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에 가서 꼼꼼하게 살펴본 후에 가능하면 지금 내가 하는 여행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에서 고르려고 한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던 때엔 책에 대한 평가도 신랄한 편이었다. 나무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이건 베개로 쓰면 딱이겠고만! 등등.

하지만 이젠 책 한 권을 써내는 고충을 알고 애초에 고르고 골라 읽으니 평가도 함부로 못하겠다. 아아,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만큼 서평 쓰기가 어려운 일임을 알아주길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 마이 투쟁' 정태현 지음

제대로 사과하기에 대한 이야기다.

만원 지하철에서 발을 밟아도 밟힌 사람을 흰 눈으로 쓱 한번 쳐다볼 뿐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은 한국 사회. 남의 창작물을 도둑질하고도 마찬가지다.

작가의 첫 책 <여행은 결국, 누군가의 하루>의 내용을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가져다 썼고 그 기사는 꽤 많은 조회 수를 올리고 댓글이 달리며 화제가 됐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작가는 시민기자와 오마이뉴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원했지만 그들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며 사과를 미루고 피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작가의 1인 시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뚫고 작가는 광화문으로 나갔다.

1인 시위를 하며 그동안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시위자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강자들(대형 언론사, 공권력)에 시원하게 한방 먹이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이 언론사와 싸우는 건 너무 힘든 일이란 사실은 겪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겨우 표절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많은 사람의 반응이 이러했다. '겨우' 표절이다. 저작권이나 지적 재산권이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취급을 받는다. 서점에서 책 내용을 휴대폰으로 찍어대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어쨌든 작가는 사과를 받았다. 오마이뉴스의 사과문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첨삭까지 해준 끝에 중간 중간 오마이뉴스의 육성이 그대로 나올 때마다 책을 집어 던지지 않기 위해 양손을 꼭 맞잡아야 했다.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는데 지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준 작가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내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오 마이 투쟁'은 시종일관 경쾌함을 잃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콕콕 찔러 준다. 우리, 미안하단 말 좀 하고 삽시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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