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장한 기상 당당한 자부심
그것은 사람의 것이지만
실지로는 바다의 것이었다

저 푸른 시원의 바다가 빚어낸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존엄하지 않은 이는 존재하지 말라

존재는 존엄과 같은 색이다
코발트 빛 바다에 물들며 살아온 이들은
비늘처럼 늘붙은 이 진실을 하루하루 깨닫는다

바다는 스스로 변화하여
찰나에 수백수천수만수억의 빛깔을 빚어낸다
어느 구석도 어제의 것은 없다

하지만 바다는 정작
단 한 번도 변화를 꾀해본 적 없다

때가 되면 해를 품고
때가 되면 달을 품어
스스로 그러할 뿐

변한다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만이 분주하다

통영항은 파랗다

사람들은
하루하루 파랗게 물든다

어제 파랗게 물들었는데 오늘도 파랗게 물든다
어제의 파랑을 지우고 새로운 파랑에 물드는 게 아니다
어제의 파랑에 새 파랑을 덧대어 물드는 것도 아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물들고
오늘은 오늘대로 물든다

언제나 새로운 순간
새로운 물듦이다

푸른 빛 내리쬐는 부둣가에 기대앉아
빠진 이로 바람 쐬는
노인의 웃는 치아가 파랗다

기나긴 세월 가운데
오고 감은 부동이다

광대한 공간 가운데
존재는 언제나 부재다

입가에 묻은 파랑을 맛본다
손끝에 부서지는 파랑을 만져본다
파랑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통영항은 없다
바다와 하늘과 사람과 배가 있을 뿐이다
출렁이는 만남이 있을 뿐이다

흩어지면 아무것도 없을
코발트빛 인연이 있을 뿐이다

저자 주. 사진은 서울 K현대미술관에서 "님을 위한 바다"라는 주제로 전시 중인 고 전혁림 작가의 <통영항, 2005>의 부분입니다.

저작권자 © 한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