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주의는 일련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잘 될 것이라고 강력한 기대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낙관주의는 아무리 험난한 과정에 처하더라도 무기력이나 절망, 좌절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태세를 의미한다.

낙관적인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변경 가능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반면 비관주의는 실패에 따른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고 그 원인을 변화 시킬 수 없는 자신의 영속적인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본다.

낙관적이고 성공한 사람의 대표적 단어는 '~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이다. 예를 들면 "나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했다, 나는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했다, 나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했다"는 식이다. 반면 비관적이고 실패한 사람의 경우에는 '~ 때문에(~because of)'이다, 예를 들면 "나는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밖에… 나는 키가 작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밖에…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밖에…" 등을 즐겨 사용하는 특징이 있다.

개인이 갖고 있는 낙관성 수준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한 마디로 낙관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성격이 밝고 명랑하다. 이에 비해 비관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성격이 어딘가 모르게 어둡고 우울하다.

똑같은 상황과 고전에 처해 있더라도 밝은 성격의 사람은 즐겁게 인생을 꾸려나가는데 어두운 성격의 사람은 무언가 불만과 자학 속에서 괴롭게 살아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치는 인상에서도 밝은 성격의 사람은 호감을 주는 반면 어두운 성격의 사람은 혐오감이나 오해를 주기 쉽다. 따라서 대인관계에서 밝은 성격의 소유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흔히 좋은 성격이라 할 때 밝은 성격이나 소탈한 성격을 꼽고 있다.

십수 년 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시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도 못할 어둠에 갇힌 채 수일을 견디면서 살아남은 최명석 군 등과 같은 X세대들의 공통점으로 '낙천성'을 들 수 있다.

매일매일 죽어나가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 역시 감동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감옥소 담장에 핀 야생화 한 포기를 보고도 감동하며 오늘 살아 있음에 감사할 줄 아는 낙관적이고 사물에 대한 긍정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이다.

첨언하면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위장병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경성으로 인한 위장병이 그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느긋하고 낙관적인 사람은 위장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의학적 방법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 햇빛을 많이 받는 것이다. 겨울이 긴 한 대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우울증이 적다고 한다.

이런 자연요법 이외에 심리적 요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음속을 환하게 빛으로 비추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낙관성의 밝은 빛이다.

식물도 창가에 놓아두면 밝은 쪽으로 구부러지는 굴광성, 향일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갓난아기도 뉘여 놓으면 본능적으로 창 쪽으로 얼굴이 돌아가기에 짱구를 안 만드려면 수시로 머리 방향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바야흐로 밝은 음성, 밝은 심성의 소유자에게 만인은 이끌리게 마련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맑고 밝으며 환한 향기를 좋아한다. 해바라기만 해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마음이 부르지 않는 것은 얻을 수 없다"라고 했다. 즉 인생은 마음속에서 떠올리고 그린대로 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 행동한 것이 씨앗이 되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행동을 하면 운명의 흐름도 그런 방향으로 물꼬를 틀게 마련이다.

"정신은 형상을 규정짓고 창조하는 전능한 힘이다. 인간은 정신이며 언제나 사고를 도구 삼아 원하는 것을 만들면서 수없는 환희와 불행을 낳았다. 인간은 은밀히 생각하며 생각은 현실로 나타난다. 환경은 그 생각의 거울에 자나지 않는다." 제임스 앨런의 말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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