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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송영수의 수기]광복 제73회 광복 전·후기를 상기하여 통일기반 구축하자어느 美藝作家의 그림 같은 이야기

이 글은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 보고 들으며 몸으로 체험한 실화이다. 어느덧 망구(望九)를 바라보니 남은 인생이 임박한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믿지 않으려는 N세대들에게 지난 역사의 처절했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미래 조국을 지켜야 할 젊은 세대들에게 앞은 역사의 자료이기에 정관(政官)내지 타(他) 의식을 베제(排除)하였다.

다소 거칠기는 하나 사실을 외면하고 미화(美化)시킬 수 없었다. 나이가 들어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전달할 사명(使命)을 가지고 있기에 지식 뿐 아니라 모든 삶의 자세(姿勢)까지도 전달코자 ➀∼➃순으로 수기를 진솔(眞率)하게 기록하여 전합니다.

 

➀ 光復 73回 光復前後 期를 想起하여 統一 基盤構築하자

➁ 6,25戰爭 第68回 學徒兵의 參戰 手記

➂ 8.15 解放 統營의 實狀

➃ 地圖에도 없는 鶴山의 길

조국광복의 기쁨을 누린지 올해가 벌써 73회를 맞는다. 광복은 장장 50년(1895년∼1945년)에 걸친 선혈들의 피눈물 나는 한일독립 투쟁의 결과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민족은 일제강점(日帝强占)으로 최대의 시련과 고통 속에 살아 왔다. 일제의 극악(極惡)한 창탈(搶奪)로 전 국토는 발가벗은 산으로 변하고 말았었다.

식솔(食率)들은 해초(海草)⦁산초(山草)로 끼니를 이어가는 극빈(極貧)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사람들은 입도선매(立稻先賣) 또는 보리고개니 하는 말들을 해 왔는데, 말속에 뼈아픈 궁핍(窮乏)의 아린 역사가 배어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식구들을 먹기기 위하여 백리길도 마다않고 곡물(穀物)을 교환하여 수 없이 멀고 험한 길을 도보(徒步)로 끼니를 해결 하고자 애썼다.

우리 고유의 언어, 문자가 있어도 마음 놓고 사용 하지도 못했고 심지어 이름마저도 개명(改名)하여 버렸다. 철로 된 기물(器物), 조상의 제기(祭器), 먹는 수저까지 빼앗아 갔다.

또한 전시라는 명목으로 공출(供出)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민간인의 물자나 애써 수확한 해물(海物)과 곡물을 우량품만 선분(選分)하여 강제로 바치게 하여 일본으로 적송(積送)해 갔다.

우리 젊은 장정들은 전쟁터로, 젊은 여자들은 일본군 위안부로, 나이 많은 분은 증용(보국대)으로 끌려갔다. 남은 사람은 위문품 만들기, 방공호 파기 등에 종사 시켜 한민족 전 국민이 노역(奴役) 되는 실정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에게 열등의식을 심어 주고자 조센징(조선사람)은 두들겨 패야 한다면서 구박 하였고, 엽전이라 부르며 철저히 무시하면서 일제 치하의 패악(悖惡)의 족쇄(足鎖)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시간이 가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국주의는 갈수록 패색(敗色)이 안연해 가고 있었고 그런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듯 일본은 최후까지 발악 했다.

어린 초등학생들까지 근로 봉사라는 미명아래 통영 명정동 앞 뒷산에 그들이 벌목하고 남은 뿌리마저 송탄유(松炭油)를 만든다고 권솔채집(眷率採集)으로 내 몰았다.

어떤 날은 오전수업 한두 시간만 끝내고 학년별로 산으로 가서 꼴(풀)베기, 방공호 파기 등 힘에 부치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질곡(桎梏)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이런 세월로 보낸 치욕의 35년간을 우리 세대는 물론 차세대가 잊지 않고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내가 충렬초등하교 4학년이었던 1945년 그해 여름에 결국 우리 민족이 그처럼 고대하던 해방을 맞게 되었다. 동남아를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군국주의 일본천황(日本天皇) 히로히토(裕仁)가 비통한 어조로 무조건 항복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우리민족은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일본 히로시마(廣島), 나가사키(長崎)에 미군이 투하한 원자 폭탄은 가공할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패색이 짙어가던 일제에 회복 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함으로써, 일황(日皇)은 미 해군 미주리 함상에서 연합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항복문서를 바치고 대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해방의 감격은 잠시였고 또 다른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휩쓸려 들어갔다. 힘없는 나라에게 주어진 해방이란 그렇게 나약하고 견고치 못하였다.

한반도를 횡단(橫斷)하고 있는 곳에 소위 북위 삼십팔도선이 그어져 남쪽에는 미군이 북쪽에는 소련군이 주둔함으로서 조국은 둘로 나누어졌다. 그것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는 전조(前兆)였고, 결국 삼팔도선이 나중에는 6.25 동난 이라는 민족의 비극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줄은 그 때는 누구도 몰랐다.

그 이후 이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국토 분단을 겪어야 했고 사상적 분단으로 수많은 비극이 연출되었다.

미군은 8.15 해방과 더불어 남한에 진주하여 비인도적 행위는 속수무책에 6.25 동난 까지 일어났다. 도와준다는 빌미로 미국의 각종 전력무기를 끌어들여와 무차별 행사하였다.

전 국토가 참담한 폐허의 잿더미로 변하였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최 극빈의 나라에 국력은 수세기를 후퇴시키고 말았다. 이를 복구 재건하고자 전 국민의 힘겨운 노역이 지속 되어야만 했으며 엄마, 누나의 머리까지 잘라 팔아 국토 재건에 조력하였고, 우리 젊은 여성들은 미군의 성추행의 패악(悖惡)질로 태어난 깜둥이, 흰둥이 혼혈아(混血兒)가 수없이 출산되었다.

이 출산한 어머니(母)를 당시 ‟양갈보니, 똥갈보니” 하는 말들을 해 왔는데 이 말속에 뼈아픈 우리역사에 치욕의 애련(哀憐)이 배어있다.

또 그들은 껌이나 과자 따위를 길바닥에 던져주며 우리에게 주워먹게 하여 이를 보고 즐기는 동물취급을 받아왔고, 이렇게 철저히 무시당하면서 그들이 뿌린 자기 자식과 그의 어머니(母) 마저 헌 신짝처럼 버리고 자기 나라로 떠나고 있었다.

이런 치욕73년의 세월에 매춘부라는 굴레를 쓰고 이 모자(母子)들이 세인들의 눈을 피해 움츠리고 살다가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 같이 한민족의 지조(志操)가 말살되고 치욕스러운 한을 지금 현재 까지 그 누구하나 대변하여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정객들....누구를 위한 정치고 무엇을 기대하고 숨기며 덮어두고 있는가? 이런 통탄할 민족의 역사를 묵비(黙秘)하고 있으니 정부 존재 가치를 의심케 하고 있다.

우리 선인(先人)들은 이렇게 비굴하게 살지 않았는데, 뒤 늦게나마 나라로 인해 희생된 이들 모자(母子)를 찾아 피맺힌 한을 풀어주는데 당파를 초월하여 보수, 진보 다 함께 범 국민운동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 되어야 한다. 교만한 강대국들이 더 이상 이 같은 야만적(野蠻的)인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각성할 때까지 주권국답게 지속 계도(啓導)하여야 될 것이다.

 

* 예시(例示) : 필자는 소년 학병으로 참전하여 2년여 간 중공군과 같이 전쟁을 하였기에 그들의 동정(動靜)을 실제 볼 수 있었다. 60만이라는 그 많은 군인들이 성추행이나 가축 한 마리도 손댄 흔적들을 찾아볼 수 없고, 휴전과 동시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자기 본국으로 갔다.

그러나 일제와 미국은 오랜 세월에 창탈과 비인도적 추행에도 인성(人性)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느 시대건 성장과 쇠퇴는 물질보다 심성(心性)에서 비롯된다. 타국의 인권문제와 전범 자칭 우방국 등을 자주 거론하면서 후안무치(厚顔無恥)하고 있다. 진정 거론할 자격이 있다고 보겠는가?

생각하면 사상이라 하는 것은 정치적 편 가르기는 몇몇 정객들이 연출하는 비극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끼칠 때가 있다.

세계사를 보아도 나라와 나라, 사상과 사상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크고 작은 전쟁을 일으켜 힘없는 나라와 몽매한 사람들만 희생 내지 대량 학살당하는 피의 연속이 아니던가?

특히 현실은 자국의 이해득실(利害得失)에 우방이 따로 없고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 광분(狂奔)하여 심각할 정도로 심화(深化)되어 일보직전 촉발의 위기감마저 든다.

다행스러운 것은 광복절을 유일하게 남북한 모두가 국가 기념일로 삼고 경축하고 있다. 광복 73년을 맞이하는 오늘, 국민과 한민족은 지난고통의 역사를 함께 겪은 토대위에서 동질성(同質性)을 회복하여 분열과 대결은 모두 내려 놓아야한다.

이렇게 하나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통일만이 한민족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진정한 광복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역량을 구축하여 민족 상생(相生)을 이루어 역사발전의 동력(動力)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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