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규 전 거제시의회 부의장

거제시의 미래는, 도시전략 설계에 있고, 그 전략설계에 의한 도시설계에 거제의 미래가 달렸다. 그것이 없는 거제시는 결단코 말하는데 내일은 없다.

21세기 Global 시대는 도시의 전략이 경제이고, 최고의 산업이며, 일자리며, 삶의 질의 성장이다.

국가 간 장벽이 엷어지면서 풍부한 상상력, 문화, 친환경 등으로 평가된 도시경쟁력을 강조하는 신개념의 도시 경제학이다. 이는 경제성·문화성·예술성·친환경성을 고루 구비한 도시만이 살아남고 각광받는다는 것을 반영한다. 도시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 되는 시대라고 인식하면서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시티노믹스’(citinomics)를 추구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의 성공 신화 구겐하임(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미술관

‘뮤지엄 마일(Museum Mile)’로 불리는 맨해튼 5번가를 걷다 보면 유독 눈에 띄는 미술관이 있다. 달팽이를 연상케 하는 구겐하임 미술관(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이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1957년 문을 연 구겐하임 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흡인력을 자랑한다. 나선형 구조로 설계된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약 9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이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인 구겐하임은 랜드마크로서 문화 시설의 가치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독일 출신의 솔로몬 구겐하임은 화가이자 초대 미술관장 등을 맡았던 힐라 르베이의 권유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등 비구상 작가들의 작품 수집에 열중했다. 몇 년이 지나자 그의 컬렉션은 미술관이 협소해질 만큼 방대해졌다. 솔로몬은 1943년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비구상 회화들을 위한 ‘영혼의 사원(Temple of Spirit)’을 지어 달라”고 의뢰했다. 당시 미술관의 자문을 맡았던 르베이 여사는 솔로몬의 뜻을 받들어 라이트에게 “우리는 투사,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 선동자, 실험가 그리고 현자(賢者)를 원한다”라는 사뭇 파격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평생 자연과 건물이 하나 되는 ‘유기 건축’의 철학을 내세웠던 라이트는 당시 62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 도발적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의 마음엔 필생의 역작을 만들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던 듯하다. 솔로몬의 제안을 심사숙고한 끝에 라이트는 고대 바빌로니아 피라미드 사원인 지구라트를 모방한 미술관을 창안해냈다. 기존 미술관의 디자인 관행을 깨뜨린 획기적인 콘셉트였다. 그로부터 16년 뒤인 1959년 10월, 뉴욕 5번가에 마침내 거대한 흰색 콘크리트 빌딩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시 전체를 바꾼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OA)

빌바오(Bilbao)는 어쩌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나 항구도시 바르셀로나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도시가 되었다. 스페인 북부 비스카야 만(프랑스 남서부 해안과 스페인 북부 해안을 사이에 두고 있는 만)의 오래된 도시인 이곳은, 아무래도 여행하기가 쉽지 않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처럼 스페인을 방문할 때 필수적으로 들르게 되는 위치도 아니고 다른 관광지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아무래도 찾아가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빌바오라는 도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 바로 구겐하임 미술관 때문이다.

낙후된 공업 도시를 완전히 탈바꿈시킨 미술관으로 세계적 언론과 시선을 집중 받았다. 세계적으로 잘나가던 철강, 조선 산업 도시를 낙후된 공업 도시로 만들어 버린 원인이 우리나라의 철강과 조선 산업이 그들을 앞지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으로 인해 주춤했던 도시 경제는 전쟁 이후에 다시 회복되었지만 1970-1980년대에는 철강 산업이 급속히 쇠퇴하면서 거대해진 도시가 오히려 부작용만을 일으킬 뿐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도시의 살리는 전략설계에 의해 도시재개발 설계에 의해 공항, 지하철, 다리 등이 새로 디자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진행된 프로젝트가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빌바오 시 정부와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이 만나서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베네치아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에 이어 새로운 구겐하임 미술관을 빌바오에 짓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의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건축가로 결정되었고, 1997년 스페인 국왕 부처의 참석 하에 미술관이 개관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중공업, 조선·해양플랜트, 자동차, 석유화학 등)공업도시 울산이 지역 총생산과 국민소득 1위를 기록을 유지하다 지난해부터 서울에 밀렸다. 이를 유심히 관찰한 학자나 전문가들은 울산시를 미래의 울산에 대한 고민과 “미래도시 스마트 울산” 구현하기 위한 도시전략을 이야기 시작했다. 거제시와는 판이 다른 다양의 산업구조와 경제 구조로 되어 있지만, 자세하게 바라보면 중화학 중심의 산업구조와 경제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일 취약한 도시라는 걸 예감한 것이다. 그러나 거제시는 미래를 위한 도시전략 설계와 도시설계에 대하여 고민하기보다는 특정 정당들의 자신들 만을 위한 프레임에 갇혀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인 다양성과 지방자치의 본질을 잊은 채 말이다.

인근 통영이 “음악 도시, 통영”, 이란 프레임으로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모티브(motif)로 문학과 미술가들의 엮어 통영을 브랜드화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전략과 도시 설계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다는 어느 한 시장의 마인드에 의해 진행됨으로 위기를 맞을 위험이 없지 않다. 애초 “음악 도시, 통영”을 도시전략으로 삼고, 구체적 사실 계획을 도시설계로 확정 짓지 못할 경우 단막으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도시설계를 제도적으로 확정하고 통영시민들의 합의가 선행되지 못했다면 더욱 그러한가.

거제시가 1995년 민선 시장시대를 열며, 도시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우거나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조선·해양·관광·휴양도시 거제”를 지향하고 거제시도 시 브랜드 마케팅을 “블루시티(blue city) 거제”로 하였다. 그렇게 한 까닭은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도시”라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거제는 똑같은 “블루시티 거제”라도 영문의 본래대로 “우울한 도시 거제”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도시의 전략설계와 도시설계가 시민 속에 공론화되어 확정되거나 제도화되지 못함으로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냥 시장의 한 사람에 의해 26만 시민과 미래세대의 “삶의 질”을 브레이크 없이 맡겨둔 결과라고 해야 올바른 지적일 것이다.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이 자연이라면 인류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도시다. 그러나 그 도시에 문화 · 예술이 덧칠되지 않으면 도시가 아니며, 관광이라는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

거제시의 성장 동력의 하나의 축으로 장목의 해양플랜트 지원센터와 오비 공단에 설립된 조선·해양 기자재 연구원과 양대 조선소와 거제대학을 하동군이 유치에 실패한 영국의 애버딘대학과 같은 한국캠퍼스 등을 유치, 산·학·연의 구체적 연계와 협치를 통해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기술 배양과 고급인력의 양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또한 다른 미래 산업을 포함한 도시전략을 설계해야 하며, 그 전략 설계에 입각한 도시설계를 단 하루라도 앞당겨 시민의 합의 속에 이루어내어야 한다. 그 전략 설계 중 하나가 도시브랜드를 높일 수 있는 트렌드가 가칭 “거제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는 어떤가?

가덕도 신공항이 유치가, 통영~한산도 등의 다리개설이 도시의 전략설계와 도시설계의 목적으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도시의 전략설계와 도시설계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유치되거나 건설된다면 지금과 같은 문화예술과 도시경관과 자연이 우수한 도시로의 스쳐 가는 길목의 도시로 전락하여 거제시민들의 삶의 질을 악화시키고, 도시 서민들 고통과 불편만 안겨주는 도시로 남게 되므로 미래를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2035년을 목표로 거제시의 비전을 설계하자! 세계 최고의 조선·해양플랜트와 스마트 해안 수변 도시를 설계하자! 도시 전체가 문화예술과 스마트 기술과 신재생 에너지와 자연이 어우러진 리아스식 해안의 특색을 살린 도시가 거제의 희망이고 미래가 될 것이다.

이행규 전 거제시의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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