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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수의 통영이야기 150- '하동댁'이라든가, '잊음'이 라든가, '그기'라든가…

통영에서 가장 오랜 마을의 하나인 명정동에 책방이 등장했다. 첫 느낌은 의아함이다. 그 깊은 곳까지 누가 책 사러 가지? 대로변도 아니고, 관광지도 아니고, 길 찾기는 얼마나 어려운데.

 역발상의 주인공은 역시나 청춘이다. '책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책과 사람의 만남', '책을 찾는 이와 책을 권하는 이의 만남', '책과 집과 사람의 어우러짐'이 떡 하니 중심에 놓여 있다.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집이 책과 사람을 함께 보듬는 이상한 나라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방, 누구나 온전히 섬김받는 고귀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고 손님이 왕이 되는 그런 차별은 없다. 찾는 이와 반기는 이가 함께 고귀해진다.

 문학과 예술의 도시 통영에서 서점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급기야 중앙동 이문당마저 없어지자 많은 이들이 탄식을 지었더랬다. 책방이 사라진 문화예술의 도시. 하지만 죽어서 사는 길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통영의 숨은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는 봉숫골. 그 변신을 이끈 '봄날의 책방'은 절망의 언덕에서 피어난 후박나무였다. 신흥 주거 밀집지 죽림에 소리소문없이 피어난 '고양이쌤' 책방은 사뿐사뿐 우아한 걸음을 내디디고 있다.

 명정골 고택에 돋아난 책방 '그기ㅡ그리고당신의이야기'는 세 번째 개화이다.

 박경리 선생의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하동댁. 사라짐과 생존의 절묘한 지점에서 하동댁 사랑채가 한옥 게스트 하우스 '잊음'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다시 책방 '그기'를 품었다.

 1屋 3色. '고택에서의 book과 stay의 만남'. 높은 천장, 넓은 통유리, 고즈넉한 한옥이 낮에는 책방으로, 밤에는 숙소로 변신한다. 바쁜 사람들이 일상에서 멈추어, 비우고, 성찰하고, 사색하는 공간.

 통영의 부촌이었던 명정동. 대한의 세 여걸이 난다는 동네. 신여성으로 현대사의 서막을 장식한 공덕귀 여사, 한국 현대문학의 영원한 숨결 박경리 선생이 나고 자란 동네.

 세 번째 여걸을 찾아, 꿈이 큰 남정네들이 기웃거린다는 곳. 꿈과는 거리가 먼 백석이란 사내가 이 동네에 살던 난이를 찾아 충렬사 계단과 명정샘과 강구 선창가를 맴돌며 거닐었던 골목길.

 이제 막 나뭇가지가 봄소식에 어깨를 들썩이는데, 마음은 훌쩍 내달려 하얀 눈 덮인 '하동댁'이라든가, 눈 속에 포근히 들앉은 '잊음'이라든가, 눈 속에 핀 매화 향 같은 그기라든가 뜬금없이 만나고 싶다. 따뜻한 차향과 어우러진 서권기, 기와를 스치며 떨어지는 눈송이, 사각사각 책장 넘어가는 소리. 그날은 꿈이 이루어지리라. 심쿵.

 아니면, 굵은 빗줄기 사이에 발걸음이 유폐 당한 날, 낙숫물 돋는 한옥이라든가, 이야기 소리 곰살스런 숙소라든가, 가슴이 꿈틀대는 책방이라든가 보고 싶다. 데크를 즈려밟는 물방울 소리며, 책과 창 사이를 거니는 시선이며, 돌아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벗의 향이며.......

 사시사철 당신은 조용히 책을 읽을 것이다. 가끔 고개 들어 시선을 마주 보다 먼 하늘을 응시할 것이다. 철마다 옷을 갈아입는 하늘이 희롱하듯 창밖을 기웃거릴 것이다.

 한옥 '하동댁'이라든가, 게스트 하우스 '잊음'이라든가, 책방 '그기'라든가.

한산신문  hannews@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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