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살아있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해녀를 말하다”

기획취재 “살아있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해녀를 말하다”

<1> 제주도의 또 다른 얼굴, ‘제주해녀’
<2> 콘텐츠로 보는 해녀의 고달픈 삶
<3> 50초의 승부, 일본 ‘아마(海女)’
<4> 해녀 보전과 전승, 어디까지 왔나
<5> 통영 해녀, 그 길을 찾다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도 나는 해녀…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보다 가정을 위해 해녀가 되어야 했던 여자, 그래서 더더욱 아내이고, 엄마인 여자”

‘호오이 호오이’ 2분가량 잠수한 해녀가 숨 가쁘게 뱉어내는 숨비소리다.

테왁을 등에지고 산소공급 장치하나 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물질을 통해 해조류와 패류 캐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여성 ‘해녀’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분포돼 있는 살아있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자 제주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제주에서 출가한 해녀들은 통영, 부산, 거제 등에 정착, 물질과 더불어 해녀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하지만 현직 해녀들의 노력에도 불구, 해녀들은 고령화와 시대적 변화에 따른 해녀 수 급감으로 명맥을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한산신문은 2개월에 걸쳐 진행된 ‘살아있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해녀’ 기획취재를 통해 통영·거제 해녀의 보존·전승·콘텐츠 발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 첫째로 제주도의 또 다른 얼굴, 해녀 발상지 제주해녀들을 조명하고 ‘제주해녀박물관’을 들여다본다.

또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 대표 해녀 발상지 일본 해녀 ‘아마(海女)’를 살펴보고, 우리 지역 해녀의 활성화와 콘텐츠 개발에 대한 제언과 지역에서의 역할 등을 제시한다. <편집자 주>

 

돌, 바람 여자 그리고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녀’
어머니 따라 친구 따라 시작한 물질 ‘제주해녀’

“오빠 결혼한 후에 중매가 들어오고 내 위로 형제가 없는 상황이라 어머니가 시집가라고 하시기에 시집가는 게 잘하는 일인 줄 알고 갔지. 남편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무것도 모르고 결혼을 했다. 헌데 아들 넷 키우자니 물질 안하고는 못 살았다. 남편은 아이 돌보고 나는 바다가고, 남편도 돈 버는 일이니 반대는 안하고, 결국 바다가 우리 가족 먹여 살려 준거지”-서귀포 위미리 해녀 강애선씨

기계 장치 없이 맨 몸과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한 호흡조절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 ‘해녀’ 이들이 하는 일을 ‘물질’이라 부른다.

해녀들은 바다밭(어장)을 단순 채취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가꿔 공존하는 방식을 택해 그 과정에서 획득한 지혜를 세대에 걸쳐 전승해왔다.

더욱이 바다밭의 관리와 마을어장 규약을 어촌계, 해녀회 단위로 정해놓고 운영, 제주도 각 어촌계는 어장의 경계, 해산물의 채취자격, 해산물 종류에 따른 채취방법과 채취기간 및 금채기간 등 제주해녀의 물질관행을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

또한 해녀들은 바다 생태환경에 적응해 물질 기술과 해양지식을 축적, 수산물의 채취를 통해 가정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했다. 반농반어의 전통생업과 강력한 여성공동체를 형성, 남성과 더불어 사회경제와 가정경제의 주체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양성평등’의 한 모범이기도 하다. 특히 제주해녀는 19세기 말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등으로 진출, 제주경제영역을 확대한 개척자이다. 2017년 12월 기준 제주 현직해녀로 소라, 전복 등 물질작업을 하고 있는 자는 3천 9백여 명(제주시 2천3백여 명, 서귀포시 1천6백여 명)이다.

해녀들은 연령과 물질 기량, 덕성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며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며 해녀공동체에서는 연장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 제주해녀 ‘해신당과 굿’

해녀들의 속담 중에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해녀의 물질 작업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녀들은 언제나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신에게 의지한다. 해녀들은 수시로 바닷가에 있는 해신당에 찾아가 제물을 준비해 물질작업의 안전사고나 풍요를 기원한다. 그리고 영등달인 음력 2월에 영등신을 위한 영등굿을 한다.

영등신은 해상의 안전과 해녀와 어부들에게 풍어를 갖다 준다고 믿는 신으로 음력 2월 초하루 제주도로 들어와 바닷가를 돌면서 미역, 전복, 소라, 천초 등의 씨를 뿌려 해녀들의 생업에 풍요를 주고 같은 달 15일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

 

“테왁을 등에 지고 힘차게 바닷속으로”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잠수한 후 물 위로 나와 숨을 고를 때 내는 소리로 마치 휘파람을 부는 것처럼 들린다. 이는 약 1분에서 2분가량 잠수하며 생긴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한꺼번에 내뿜고 산소를 들이마시는 과정에서 ‘호오이 호오이’하는 소리가 난다. 해녀들은 ‘숨비소리’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신선한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짧은 휴식으로도 물질을 지속한다.

해녀들은 물옷을 입고 물안경, 테왁망사리, 빗창, 까꾸리 등의 도구로 물질을 한다. 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도구로 해녀들이 그 위에 가슴을 얹고 작업장으로 이동할 때 사용한다. 테왁에는 망사리가 부착돼 있어 채취한 수산물을 넣어둔다. 빗창은 전복을 떼어내는 데 쓰이는 철제 도구이며 까꾸리는 바위틈의 해산물을 채취할 때나 물속에서 돌멩이를 뒤집을 때, 물밑을 헤집고 다닐 때 등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질도구다. 특히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2008년 제주해녀의 물옷과 물질도구 15점을 제주특별자치도민속문화재 제10호로 지정했다.

또한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자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했다. 제주도 해안에는 마을마다 3~4개씩의 불턱이 있었으며, 현재도 70여 개의 불턱이 남아있다.

 

‘제주해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해녀 생활은 고되지만 바다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줬다. 해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해녀로서의 삶은 더욱 떳떳하고 뿌듯하게 느껴진다. 바다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해녀들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줬으며 해녀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를 높여줬다”

제주해녀는 제주의 강인한 어머니이며 제주도민의 정신적 기둥이다. 제주해녀는 지역공동체를 구성하면서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했다. 뿐만아니라 할망바당(나이든 해녀를 위한 바다어장), 게석(잡은 것을 나눠 주는 배려문화) 등 노약자들을 배려하고 물질 수익으로 기금을 마련해 마을, 학교 등 사회에 공헌했다. 또한 갯닦이(어장형성을 위한 조간대 암반 청소), 금채기(자원관리를 위한 채취 금지기간), 투석(자연석을 이용한 어장만들기) 등 바다와 공존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제주해녀문화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16년 11월 30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또 문화재청은 ‘제주해녀’를 2017년 6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 “해녀에 관한 다양한 학술연구와 기록화 사업 등 해녀의 가치 공유와 확산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를 떠난 해녀들 ‘출향해녀’

출향해녀는 19세기 말부터 제주를 떠나 국내의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 충청도 등지와 해외로 바깥물질을 나간 해녀를 일컫는다. 제주해녀들이 섬이나 먼 바다 어장으로 이동할 때 노를 저으며 불렀던 ‘노 젓는 소리’를 총칭해 해녀노래라 한다. 해녀들은 바다 작업장을 오갈 때 직접 노를 저었는데 흥을 돋우기 위해 또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을 즉흥 사설로 엮어 노래했다.

해녀집단 공동체의 정서와 인식이 잘 표출되고 있어 구비 전승되고 있으며, 해녀노래는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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